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에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형제경영의 본보기’다. 국내 굴지의 뮤지컬 프로듀서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와 설도권 대표는 피를 나눈 형제이자 3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사업의 동반자로서 형제경영의 성공 사례를 써내려가고 있다.
“형님(설도윤 대표)이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무대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면 저는 숫자를 잘 보는 편이었죠.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굴지의 기업인 삼성마저도 공연 시장 데이터 없이 경영 판단을 내릴 정도였어요. 저는 일찌감치 공연 시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와 정보 시스템의 필요성에 눈을 떴습니다. 이른바 지표 관리가 되니 공연 마케팅 전략이 나올 수 있었고 그때부터 감성과 이성을 결합한 우리 형제의 파트너십이 화제를 모았죠.”
두 형제의 의기투합은 공동 프로듀싱 작품인 ‘캣츠(2003년작)’ 때보다 훨씬 전인 지난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생 설도권 대표는 대학 시절 주식 투자로 번 돈을, 형 설도윤 대표는 아끼던 피아노를 팔아 마련한 돈까지 보태 음반기획사를 차렸고 연습실 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숱한 가수들과 인연을 맺고 음반을 냈다. 그러나 음반이 나올 때마다 성패에 휘청이던 회사는 1994년 끝내 부도가 났고 두 형제는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성악과 출신으로 예술가 성향이 강한 설도윤 대표와 경영학도 출신의 숫자놀음에 강한 설도권 대표는 언뜻 보면 정반대의 성향 같지만 이들이 나눈 진한 피를 상징하듯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근성이다. 둘은 어렵게 사업자금을 모아 이듬해 뮤지컬기획사를 설립했고 첫 작품으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선보였다. 이때 처음으로 설도윤 대표는 프로듀서, 설도권 대표는 마케팅 디렉터로 역할 분담을 시작했다. 첫 작품이 흥행하면서 사업도 차츰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부침은 이어졌고 두 형제는 더 큰 과제를 찾아 나서게 된다. 삼성영상사업단의 공연제작사인 T&S컴퍼니에 합류한 설도권 대표는 티켓 매니지먼트 현황 보고 시스템을 만들면서 공연 마케팅의 핵심이 데이터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됐고 당시의 경험이 2000년 클립서비스 설립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에비타’ 등 숱한 흥행 뮤지컬을 공동 프로듀싱하며 설도윤 대표는 제작 프로듀서로서, 설도권 대표는 회계부터 마케팅, 투자, 유통 전반을 책임지는 운영 프로듀서로서 각자의 전공 영역을 존중하며 협력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는 설도윤 대표의 자서전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형제경영에 관한 대목에서 설도윤 대표는 설도권 대표를 ‘유난히 감성적인 나와 달리 냉철한 원칙주의자’ ‘일을 대할 때 철두철미하게 공정성을 제일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내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면 동생은 그 그림을 수치화하는 작업을 한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싶으면 동생은 내 생각에 제동을 건다. 문제는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모험심이 사라지지 않을 때이다. 내가 육감을 믿고 밀어붙이면 동생은 내 무모한 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묘책을 찾느라 고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늘 공동 프로듀서 타이틀을 달고 형과 보폭을 맞췄던 설도권 대표에게 올해는 의미 있는 해다. 처음으로 제작과 경영을 아우르는 프로듀서로서 올 7월 의상과 메이크업 등을 업그레이드한 최신 버전의 뮤지컬 ‘캣츠’를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 것이다. 설 대표는 “까다로운 국내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런던 웨스트엔드의 최신 버전에 호주 등 다양한 지역 버전의 장점을 골라 접목시켰다”며 “이 역시 관객들의 취향을 수치화한 자료로 설득한 끝에 우리만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미 누적 공연 1,300회를 돌파한 스테디셀러지만 개막 7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현재 지방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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