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된 행정해석 폐기를 언급한 것은 국회에 근로기준법 통과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없이는 고용률과 국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 있는 결단과 실천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로 근로기준법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행정해석을 폐기해 주당 52시간 근로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치적인 의미도 있다. 현재 보수야당 재편 움직임으로 바른정당 집단 탈당 및 자유한국당 입당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으며 이 경우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은 더욱 심해진다. 20대 국회 하반기에 직권상정 권한이 있는 국회의장 자리는 물론이고 주요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야당에 내줄 수 있다. 지금의 구도에서도 법안 통과가 어려운데 야당의 몸집이 더 커진다면 시행은 더욱 멀어지므로 정부가 가진 권한인 행정해석 폐기라는 우회로로 국정운영의 핵심 과제를 사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겨냥한 측면도 있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안을 논의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에 야당 인사가 줄줄이 앉는다면 사사건건 부딪히며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 행정해석 변경으로 정책이 빠르게 현실화하면 국민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몸소 체험할 수 있고 이는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들고 나오며 ‘소득주도 성장이 한계에 달한 것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 경제라인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혁신성장을 강조하자 소득주도 성장에 한계가 있어 우회로를 택했다고 해석들을 하는데 혁신성장은 문 대통령 정책에 처음부터 있던 것으로 부각이 안 됐던 것뿐”이라며 “청와대의 경제정책 최종 목표는 국민 모두의 삶이 좋아지는 질적 성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적으로는 고용 상황을 서둘러 개선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정부는 ‘주당 52시간으로 근로시간 단축→기업의 추가 고용’을 노리고 있다. 고용지표는 모든 경제지표 중 가장 반응이 느린데 관련 정책법안이 국회에 막혀 있다 보니 행정해석을 변경해서라도 시행해 고용지표에도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가 실제 행정해석을 변경한다면 60년 이상 계속돼온 한국 노동 시장의 관행이 한번에 바뀐다는 의미가 있다. 정부는 지난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후 줄곧 1주일간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2시간 범위 내에서(총 5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다만 ‘1주일’의 기준을 평일 5일이라고 한정해 기업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8시간씩 노동시간을 유지(총 68시간)했다.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문 대통령도 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선 공약집에서도 행정해석 변경은 언급하지 않고 ‘주 52시간 노동시간 준수’라고만 명시했다. 취임 후 일자리위원회가 방침을 밝힌 적은 있어도 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급작스러운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잘 알겠지만 시장에서의 혼란은 너무 클 수 있다”며 “입법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세종=임지훈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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