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10일의 황금연휴동안 MBC에서는 새로운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이지 않는다. 특선 영화, 드라마 몰아보기만이 편성표를 채운다. 한 방송관계자는 MBC가 추석을 겨냥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일부는 촬영까지 했으나 편집 인력이 부족해 내보내지 못한다고 전했다.
지난 설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당시 MBC는 파일럿 프로그램 ‘오빠생각’과 ‘발칙한 동거’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정규 편성까지 기세를 몰았다. 명절마다 돌아오는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도 대형 아이돌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명절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예능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 중 하나다. 실제로 MBC를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 ‘복면가왕’은 모두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뒤 정규로 편성돼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MBC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볼 수 없게 됐다. 우선 새 파일럿 론칭 소식이 전무하다. MBC의 간판 명절프로그램으로 매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아육대’는 대체 인력을 투입하며 녹화 강행 의지를 보였지만 촬영일 연기 끝에 결국 잠정 중단됐다.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던 ‘이불밖은 위험해’ 미공개 영상을 내보내는 것으로 구색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다른 방송사에 비하면 초라하다. KBS가 파일럿 프로그램 7개를 선보이는 것을 비롯해 SBS, tvN, JTBC 모두 추석특집 예능을 준비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은커녕, 기존 프로그램에서도 정상 방송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MBC의 금·토·일 예능은 이미 초토화됐다. 두 자릿수 시청률을 책임지던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복면가왕’은 4주 넘게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며 시청률이 반토막 났다.
이 같은 시청률 하락은 광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에 따르면 MBC의 광고 단가는 평소의 80% 선으로 떨어졌다. ‘무한도전’은 15초짜리 광고에 1,300여만 원을 받던 것이 1,000만 원 전후로 판매됐다. 당연히 광고 물량도 감소했다.
예능 외에 드라마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한예슬과 김지석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20세기 소년소녀’는 지난 25일 첫 방송 예정이었다. 그러나 촬영이 2주 동안 중단되면서 방송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두 번이나 연기 끝에 10월 9일 첫 선을 보인다.
MBC본부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등 경영진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4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여느 때보다 강도 높은 총파업을 실시, 국민의 방송을 돌려드리겠다며 싸우는 중이다.
사측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행동을 시간 끌기로 해석하는 가운데 MBC의 암흑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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