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을 일상이 아니라 무엇인가 플러스 알파에서 나온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행복한 삶은 숙제가 되고 배워야 할 대상이 되고 말죠. 또 다른 ‘파랑새’ 같은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우려스럽습니다.”
‘행복 심리학자’로 불리는 최인철(50)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자 “행복한 삶이 목표가 된다면 오히려 행복해지기 어렵다”며 이같이 대답했다. ‘파랑새’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선 여정을 통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프랑스 아동극이다.
최 교수는 인문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프레임’의 저자이다. 그의 강의가 ‘서울대 3대 명강의’로 선정될 정도로 그는 실력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부터 서울대 산하 행복연구센터장을 이끌면서 행복의 조건과 효과·방법 등을 연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습관 등을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행복학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최 교수를 26일 판교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행복감을 가져오는 원천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행복은 하루하루 잘 살거나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 생활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성취감을 느끼면 행복해합니다. 결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그는 행복의 의미를 넓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행복에는 감정적인 즐거움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포함된다”며 “예술 등 힘든 일을 해도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데서 보듯 좋은 삶으로까지 의미를 확장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 행복을 위한 구체적인 세 가지 조언도 소개했다. 우선은 일상을 잘 보내는 게 행복이라는 마음가짐이다. 두 번째는 고통도 삶의 일부라며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생활 태도다. 귀찮거나 마음이 불편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고 한다. 고통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과정을 겪는 경험이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습관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모두 좋은 습관이다. 그는 “본인의 마음을 스스로 관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만큼 소소한 활동을 주기적으로 하는 습관이 개인의 행복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민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 교수는 “행복지수 평균치보다는 행복감이 아주 낮은 사람들을 끌어올려 행복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며 부탄을 사례로 들었다. 최근 유엔이 발표한 ‘2017년 세계 행복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5위인 반면 부탄은 97위에 머물렀다. 부탄이 행복국가라는 사회 통념과는 동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최 교수는 “부탄은 국가 목표를 국민 행복으로 삼고 있는데다 소득 불평등 정도가 낮기 때문에 행복 불평등도 굉장히 낮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과 지위·행복감에 대한 국민 간의 편차가 크다 보니 전체 순위는 높아도 대다수의 주관적인 행복 체감도가 부탄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금은 불특정 다수의 행복보다는 저소득층, 중증 질환이나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는 국민들이 행복하려면 전반적인 경제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선진국이 대부분”이라며 “방글라데시가 행복국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 외에 정부의 또 다른 역할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국민 행복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해결책은 없다”며 “정부는 물론 개인과 우리 사회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 행복은 과거 근대화 시기의 경제계획처럼 종합대책을 내놓거나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과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너도나도 국민행복시대를 외치면서 각종 이벤트를 추진했지만 행복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방향 자체를 잘못 잡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경제 이외의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집단주의 문화 개선입니다. 행복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로움입니다. 또 하나는 투명성과 신뢰·원칙을 지키는 정부입니다. 정부 신뢰가 떨어지면 국민 행복도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일어난 최순실 사태가 대표적이죠.”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출범 4개월에 불과해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도 “인사 문제에서 과거 정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공정함을 판단하는 첫 절차는 인사입니다. 원칙 없는 인사가 몇 번 이뤄지면 신뢰는 와르르 무너질 수 있어요.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역할을 일관되고 사심 없이 수행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이 국민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제 막 50줄에 들어선 최 교수에게 우리 사회에서 행복도가 가장 낮은 50대 남성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그는 멋쩍게 웃더니 “이들 세대는 자녀 교육과 부모 부양, 은퇴, 노후 걱정 등의 부담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일주일로 치면 휴일 직전의 금요일처럼 가장 피곤한 시기”라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겪는 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고 이미 은퇴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우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남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행복도가 가장 떨어지는 집단이지만 60대 이후에는 상승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입시나 취업 경쟁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녀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한국 사회는 극소수의 학생과 학부모를 제외하면 모두 패배자입니다. 평생에 걸쳐 마음의 상처가 너무 오래갑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나친 물질주의 때문에 과도한 경쟁은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돈이나 성공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며 본인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마음을 길러줘야 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경쟁에서 자유로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게 중요해요.”
그는 가족 간 갈등을 치유하는 방안이나 행복한 생활에 대해서는 “운동도 며칠 하면 근육 회복을 위해 쉬어줘야 하듯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필요하다”며 “각자 하든, 동시에 하든 여행이나 운동 습관을 기르면 회복의 에너지가 쌓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사회적으로는 행복을 대화의 소재로 더 자주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랐다. 아이큐(IQ)나 콜레스테롤 수치처럼 개인의 주관적인 행복 점수를 측정하고 남과 공유하는 문화가 생겨나기를 바란다는 생각이다. 최 교수가 카카오와 함께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하고 분석해 데이터를 쌓는 ‘마음날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나 월드컵 진출 여부 등은 잘 아는데 정작 본인의 행복지수가 몇 점이고 우리나라 평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행복지수를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He is…
△1967년생 △1992년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1998년 미국 미시간대 사회심리학박사 △1998년 미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교수 △2000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2003년 한국심리학회 소장학자상 △2005년 듀오 휴먼라이프연구소 연구책임교수 △2010년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
/대담=최형욱 디지털미디어부장 choihuk@sedaily.com
/정리=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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