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쟁 나면 어떡해?”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의 물음에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전쟁은 안 날 거야. 걱정 마.” 아이 아빠는 아내를 쳐다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전쟁 터지면 어디 도망갈 데라도 마련해놓았어?” “도망은 무슨, 핵 한 방이면 끝장인데.” 산행 온 은퇴자의 눈앞에 재롱떠는 손주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보지 못하던 광경이다. ‘안보불안 조성’이라는 가시 돋친 말은 이제 사라지고 6·25전쟁 이후 ‘최고조의 위기 상황’이 공식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제무대에서는 ‘말 폭탄’이 살벌하게 오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설마 전쟁으로까지야 가겠어?” 하고 ‘태평스레’ 지내는 데는 정부와 국제공조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전쟁 나면 국민은 대통령에게, 대통령은 미국에 책임을 돌리면 되지 뭐”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농담은 불안감과 동시에 기대감의 반어(反語)로 들린다.
역대 정부는 이 땅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일만큼은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왔다. 이를 집대성한 현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과 대비돼서도 돋보였다. 평화의 당위성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은 국내외적으로 이미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무력 충돌로 가기 전에 대내외적 공조로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보불안이 곧 해소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 역시 드물다. 국제공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에서 최근 벌어진 ‘해프닝’은 불안감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증폭시킨 느낌이다. 안보특보가 바깥으로 ‘떠들고’ 다니고 국방부 장관이 ‘과도한’ 비판을 한 것도 문제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의 ‘엄중 경고’가 한 방향으로만 이뤄진 것이 더욱 그러하다. 결국은 군사적 옵션 문제인데 이 와중에 야당 일각에서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 ‘예상된 퇴짜’를 맞고 온 것도 난맥상을 더했을 뿐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안보위기에 대한 여야정 협의를 헌법재판소장 국회 부결에 반발해 여당이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엄중한 안보위기에 직면해서까지 이런 구태가 이어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개탄스럽다’. 한마디로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 없는 ‘그들만의 리그’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아직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지 못하면서 한때 안보위기관리의 국제적 ‘운전석’을 차지한 것처럼 하고는 최근에 와서 ‘힘이 없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나마 국민들의 기대마저 외면하려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 모두는 북한 핵 위기에 대응하는 시나리오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있었다면 정부의 스탠스는 흔들리지 않고 내부의 불협화음도 없이 탄력적으로 대응해왔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치권의 혼선도 사전에 정리하고 국민에게 기대와 동시에 협력을 구하는 범국가적 위기관리 시나리오의 작성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예상되는 각 상황과 그 전개에 따른 모든 대응방안이 망라돼야 한다. 군사적 억지력 보강도 사전적으로 배제할 이유는 없으며 부족한 대응수단을 개발하는 것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사시 행동요령을 포함한 매뉴얼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
이 사안이 이번주 추진되고 있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회동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안보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야당이 이 회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당과 대통령도 이 회동을 ‘대통령 행사’의 하나로 치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야정 협의로 ‘설마가 사람 잡는’ 참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안보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헤드기어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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