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전략폭격기가 북한 앞 동해 국제공역에서 무력시위를 펼친 것을 두고 영공을 넘지 않더라도 자위권을 행사해 격추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유엔총회 일정을 마친 리 외무상은 이날 머물고 있던 뉴욕 밀레니엄힐튼 유엔플라자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선전포고한 이상 미국 전략폭격기가 설사 우리 영공 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전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F-15 전투기 편대 호위를 받으며 북한 동해상 최북단 국제공역을 비행하는 ‘무력시위’를 펼친 것을 선전포고로 보고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선전포고는 없었다며 반박에 나서 미·북 간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국은 미 본토와 동맹 방어를 위한 모든 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추가 무력시위 가능성도 열어놨다.
양측이 실제적 군사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잇단 군사 도발을 이어온 가운데 미국과 북한은 ‘완전 파괴’(트럼프)와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김정은) 등 ‘말싸움’을 거듭했다.
리 외무상이 자위권을 언급한 것은 미국이 핵심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추가로 배치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억제하기 위한 경고로도 해석된다. 특히 리 외무상은 “트럼프는 지난 주말에 또다시 우리 지도부에 대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함으로써 끝내 선전포고를 했다”며 “유엔 헌장은 개별국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헌장 51조는 타국에게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정당방위 성격에서 ‘개별 자위권’을 규정했다. 북한이 자위권을 언급한 건 앞으로 북한이 나설 수 있는 군사행동은 미국의 불법적 선제공격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 조치임을 밝혀 군사충돌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리 외부상이 ‘트럼프 선전포고’ 주장을 한 것을 두고 “터무니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에 선전포고를 한 바 없다. 솔직히 말해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한 나라가 국제공역에서 다른 나라 비행기를 향해 타격한다는 것은 결코 적절한 일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카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대변인도 “어떤 나라도 국제공역에서 다른 나라 비행기나 배를 타격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로버트 매닝 국방부 대변인은 B-1B 랜서 무력시위를 “비행할 권리가 있는 국제공역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도발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처하기 위한 모든 옵션을 대통령에게 제공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미 언론은 리 외무상이 자위권을 언급한 점을 강조하며 미·북 간 ‘치킨게임’ 양상이 장기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무력충돌 상황을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공이 아니더라고 미 전략폭격기를 떨굴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한 북한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지형인턴기자 kingkong9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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