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 15~17일 ‘살인자의 기억법’이 48만 3237명을 추가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206만 3263명을 기록했다.(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지난 6일 개봉해 흔들림 없는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9월 극장가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함은 물론, 올해 개봉한 스릴러 중 최고 기록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미 올해 한국 스릴러들의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외화 ‘겟 아웃’의 213만 8148명 수치도 위협하고 있다.
앞서 개봉 5일 만에 100만, 8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추석 전, 비성수기에 관객들을 사로잡아 틈새시장에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근 몇 년간 ‘스릴러는 가을’이라는 개봉시기와 흥행 관계를 파악해 스산해질 무렵, 관객들의 심리를 잘 겨냥했다.
개봉 전에는 김영하 작가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기대 반 걱정 반 요소가 됐다. 그간 원작 기반의 작품들은 안정적인 스토리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반면, 기존의 재미를 넘어서지 못할 경우 원작 팬들의 매서운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딜레마를 뚫고 ‘살인자의 기억법’을 본 관객들은 오히려 원작과 다른 전개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의 설정과 시점을 비롯해 전반의 스토리를 가져와 후반을 다르게 변주했는데, 또 다른 만듦새가 썩 괜찮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구타유발자들’(2006), ‘세븐 데이즈’(2007), ‘용의자’(2013)로 심리를 자극할 줄 아는 원신연 감독의 연출력이 또 한 번 인정받은 셈이다.
소설에서 볼 수 없던 부분인 영화 매체 속 배우들의 연기도 크게 한 몫 했다. 주연 설경구는 극중 50대 후반이자 살인본능이 숨어있는 병수의 날카로움과 괴기스러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흰머리 가득한 장발과 반점으로 뒤덮이는가 하면, 10kg 이상 체중을 감량했다. ‘오아시스’ 때 18kg 감량, ‘역도산’ 때 26kg 증량에 이은 독한 연기 열정이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발현됐다.
외형뿐만 아니라 내면으로도 극한의 연기 투혼을 발휘했다. 지난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실 연기적으로 힘든 순간에 만난 작품이었다. 단순하게 살을 찌우고 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며 “캐릭터 후유증인지 이번에는 진짜 잠을 못 잤다. 촬영 기간에 숙소에 돌아와서 머릿속에 계속 뭐가 남아있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 많이 복잡했다”고 밝혔다.
14kg를 증량한 김남길의 살벌한 변신, 아이돌 AOA에서 연기자로 발돋움한 배우 김설현의 손색없는 연기 등 조연들의 합도 극을 잘 꾸렸다.
사실 설경구는 과거 ‘박하사탕’(1999),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광복절 특사’(2002), ‘실미도’(2003), ‘해운대’(2009)’, ‘감시자들’(2013) 등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겨오다 ‘나의 독재자’(2014), ‘서부전선’(2015), ‘루시드 드림’(2016),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으로 최근 작품들에서 연이은 고배를 마셨다. 설경구의 연기 고민 흔적이 ‘살인자의 기억법’ 병수 역으로 나타났고, 흥행 성적은 이를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완성도 높은 원작, 연출기법, 개봉시기가 밑바탕이 된 상태에서 주연 설경구의 연기가 극적 재미의 방점을 찍었다. 경력 25년차, 지천명(知天命) 배우의 행보가 새삼 더욱 알고 싶어지는 이유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