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개그 프로그램인 ‘봉숭아 학당’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뉴라이트 역사관,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등과 더불어 창조과학 활동 등에 대해 캐물었다. 특히 박 후보자가 창조과학을 신봉하는지 묻는 과정에서 지구 나이가 6,000년인지를 두고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박 후보자는 창조과학이 개인적 신앙의 영역이라며 방어막을 치는데 주력했다. 반면 일부 의원들은 창조과학이 진화론 등 근대 과학의 성과를 부정하며 종교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려는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움직임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의식해 벤처 정책을 총괄할 부처 수장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다만 이 같은 지구 나이 논란이 얼핏 유치원생 수준의 말싸움으로 보이지만 종교와 과학간 분리라는 근대적 가치, 신앙의 자유와 공적 업무 간의 선 긋기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숙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창조과학이 지구 나이를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신앙으로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병관 더불어민주당의 의원의 “지구의 나이를 몇 살이라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구의 나이는 신앙적인 나이와 과학적인 나이가 다르다”고 대답을 흐렸다.
박 후보자는 김 의원의 “본인은 생각을 묻는 거다”라고 재차 질문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또 다시 “후보자가 보기에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다그쳤다. 박 후보자는 역시 “창조신앙을 믿는 입장, 교회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과학자들이 탄소동위원소 등 여러 가지 방법에 근거해서…(추정하는 지구 나이가 다르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김 의원은 “창조과학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부분에 동의하느냐”고 또다시 물었고 결국 박 후보자는 마지 못한 듯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자는 창조과학이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창조과학 자체는 옹호했다. 김 의원이 “일반적으로 과학계에서는 창조과학을 반과학 내지 유사과학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묻자 박 후보자는 “저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창조과학이 아닌 창조론을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창조과학자들의 논의는 국민으로 존중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마치 남의 학회 얘기하듯이 객관적으로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구체적으로 (창조과학이) 비(非)과학, 반(反)과학, 유사과학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나”이라며 개인의 입장을 다그치자 “그런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박 후보자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창조과학자들이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입증된 부분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창조과학을 옹호했다.
창조과학은 진화론이나 지구과학, 천체과학 등 현대 과학의 이론적 성과를 부정하고 성경에 쓰인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의 변형된 형태로 분류된다. 박 후보자가 몸 담았던 창조과학회도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믿는다.
창조과학 논란은 1925년 미국 테네시 주 의회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반(反)진화론법’, 일명 ‘버틀러법’을 통과시키면서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한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되자 관련 재판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근대적 합리주의자들간의 대리전으로 떠오르며 미국 전역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해당 교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2년 뒤 테네시 주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아칸소주 등 다른 주에서도 지적설계론(창조론)을 하나의 과학이론으로 인정해 진화론과 동시에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등 여러 차례 변형된 시도가 있었지만 2005년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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