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호주 오픈)-우승(프랑스 오픈)-16강(윔블던)-우승(US 오픈).
최전성기였던 2010년의 성적이 아니다. 2017시즌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메이저대회 성적이다. 1986년생으로 서른을 넘긴 나달은 “올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조차 믿기지 않는다”며 감격해 했다.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메이저 US오픈.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결승에 오른 키 203㎝의 장신 케빈 앤더슨(32위·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나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3대0(6대3 6대3 6대4)으로 간단히 경기를 끝낸 나달은 우승상금 370만달러(약 41억8,000만원)를 가져갔다. 통산 16번째 메이저 우승으로 로저 페더러(3위·스위스)가 보유한 남자단식 메이저 최다승(19회)에 3승 차로 다가섰다.
나달이 한 시즌에 메이저 타이틀을 2개 이상 따내기는 지난 2013년 이후 4년 만이다. 그때도 올해처럼 프랑스오픈과 US오픈을 제패했다. 지난해 손목 부상으로 10월에 시즌을 접을 때만 해도 나달은 부활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고질적인 손목과 무릎 부상을 안고 서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달은 코트 이곳저곳을 쉼 없이 누비며 누가 먼저 진이 빠지느냐 싸움을 거는 스타일. 체력 소모가 엄청난 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한 나달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2014년 프랑스오픈 우승을 끝으로 지난해까지 메이저 결승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나달이다.
나달은 그러나 피나는 재활 끝에 1월 시즌 첫 메이저 호주 오픈에서 덜컥 준우승하더니 ‘텃밭’ 프랑스 오픈에서 통산 10번째 우승 위업까지 쌓았다. 지난달에는 3년 만에 세계랭킹 1위마저 탈환한 뒤 4년 만의 US 오픈 제패로 용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넣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랠리를 줄이기 위해 빠르고 간결한 공격으로 스타일을 바꾼 게 주효했다. 나달은 이날 결승에서 다섯 번 네트 플레이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올해 테니스 메이저대회는 36세 페더러의 우승(호주 오픈)으로 시작해 나달이 마침표를 찍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페더러는 윔블던도 우승했다. 물론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앤디 머리(영국) 등 부상으로 US오픈에 불참한 강자들이 내년 시즌 더 강해져 돌아오면 판도는 또 요동칠 수 있다. 나달은 “부상과 역경 뒤에 거둔 것이라 올 시즌의 성과는 더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US 오픈 8강에서 탈락한 페더러는 1년4개월 만에 세계 2위를 되찾았고 한국의 정현(삼성증권 후원)은 47위에서 44위로 올라섰다. 역대 개인 최고 순위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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