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2시30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은색 포드 머스탱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인근에 있던 경찰차에 “과속 난폭운전자가 신사역사거리에서 영동대교 남단 교차로 방향으로 도주 중이다”라는 다급한 무전이 전해졌다. 강남경찰서 소속 서도철(40·가명) 경사는 자신의 눈앞을 총알처럼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본능적으로 사이렌을 울리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정지명령을 내렸지만 머스탱 운전자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과속차량은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사람들이 붐비는 압구정 로데오거리로 들어서며 시민들을 위협했다. 10분 넘게 이어지던 추격전은 머스탱이 가판대를 들이받으며 끝이 났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에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장면이다. 영화 속 단골 메뉴인 경찰차의 슈퍼카 추격은 실제 어떨까.
경찰 순찰차량은 대부분 국산차량인 현대 아반떼와 쏘나타다. 해마다 신차를 구입하기 때문에 연식이 달라 모두 똑같은 차량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차량의 최고속도는 시속 200㎞를 넘지 못한다. 반면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등 슈퍼카의 속도는 300㎞를 웃돈다.
일반적으로 슈퍼카는 일반 스포츠카보다 성능이 한 단계 더 높은 차를 말한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S 차량의 최고속도는 350㎞/h에 이르고 올해 출시된 포르쉐 911 카레라 GTS도 300㎞/h를 훌쩍 넘긴다. 차량 성능 차이가 크다 보니 경찰차가 슈퍼카를 따라잡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 4월29일 자정께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차량 운전자 김씨는 올림픽대로부터 인천공항까지 1~3차로를 넘나들며 시속 260㎞ 이상의 속도로 난폭운전을 했다. 경찰은 김씨 차량의 폭주 경로와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놓칠 수밖에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차로 고성능 난폭운전 차량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증거 영상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차량 성능보다 경찰이 슈퍼카 추적을 꺼리는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다. 사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찰이 조직적으로 구간별 포위망을 짠다면 충분히 슈퍼카를 붙잡을 수 있다. 하지만 추적 과정에서 용의자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주하기 때문에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차가 용의차량을 추적할 때 교통법규 위반이 빈번해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뒤따른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차 교통사고는 2012년 239건에서 2013년 241건, 2014년 249건, 2015년과 2016년 각각 221건으로 해마다 200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2월 부산 해운대구 중동의 한 도로에서는 아반떼 운전자 권모(28)씨가 경찰차 옆면을 추돌한 뒤 300m가량을 필사적으로 달아나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K7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아반떼에 동승한 심모(27)씨가 숨졌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광주시에서도 광주경찰서 소속 A(52) 경위가 음주운전자로 의심되는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불법 유턴을 시도하다 직진 신호를 받고 마주 오던 B(28)씨의 오토바이를 정면에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B씨는 뇌출혈과 어깨·팔·다리 등 심한 골절상을 당해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경찰이 슈퍼카 난폭운전 신고를 접수받으면 어떻게 추적할까. 현재 시속 300㎞로 질주하는 슈퍼카를 단속할 공식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슈퍼카 난폭운전자를 검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교통단속 카메라를 이용해 용의자를 역추적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CCTV에서 증거 영상을 확보한 뒤 차적조회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한다. 또 다른 방식은 소극적인 추격 방식이다. 난폭운전 신고를 받은 현장 경찰은 경고 방송을 한 뒤 이에 불응하면 용의차량을 추적하지만 추적시간은 10분가량으로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후 인근 경찰차에 무전을 넣어 협조를 요청한 뒤 용의차량에 대한 차적 조회를 실시한다. 교통위반 단속을 하는 일선 경찰은 “슈퍼카의 도심 질주를 직접 경찰이 추적해서 잡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슈퍼카를 추적하는 데 영상이 중요한 만큼 난폭운전 용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보이는 경찰보다 보이지 않는 시민의 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통위반 관련 시민공익제보 건수는 2014년 74만6,000건에서 2015년 127만8,000건, 지난해 182만9,000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CCTV 영상과 시민 제보가 슈퍼카 난폭운전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6월 올림픽대로를 시속 234㎞로 달리며 레이싱을 펼치다가 연쇄 추돌사고를 낸 수입차 업체 직원 3명을 검거하는 데도 시민의 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고 발생 당시 주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에는 이들이 위험천만한 레이싱을 벌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시민 공익제보 활성화는 운전자 스스로 주변 집단에 감시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 난폭운전 자체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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