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공영(公營)방송 MBC와 KBS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였다. 양대 공영방송의 전례 없는 대 화합은, 두 방송국의 ‘사장님’ 덕분이었다.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는 KBS와 MBC노조의 총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방송국에 울려 퍼지는 아나운서들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은 물러나라”
지난달 30일 전국 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 노조)는 8월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전국 18개 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재적인원 1785명 중 1682명이 투표에 참가해 1568명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투표율 95.7%에, 찬성률이 무려 93.2%. MBC는 이미 400여명의 기자와 프로듀서(PD), 아나운서 등이 제작 거부 중이며, 오는 4일 총파업을 할 예정이다.
총파업에 돌입하는 MBC와 함께 KBS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KBS 노동조합 등 사내 2개 노조가 ‘공영방송 정상화와 경영진 사퇴’를 조건으로 각각 4일과 7일 파업을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MBC와 KBS, 양대 공영방송사 노조의 동시 파업은 2012년 이후 5년 만이다.
MBC에 이어 KBS까지 제작 거부를 선언하면서, 방송 파행은 불가피하게 됐다. MBC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경우 김태호 PD가 총파업에 동참하면서 2일 방송을 끝으로 무기한 결방을 알렸으며, ‘나 혼자 산다’ 역시 녹화분이 준비된 1일 방송을 끝으로 재방송이 편성될 예정이다. 결방을 확정한 ‘무한도전’과 ‘나 혼자 산다’ 외에도 ‘라디오스타’ 한영롱 PD, ‘복면가왕’ 노시용-오누리PD, ‘세모방’ 김명진-최민근 PD 등 대다수의 예능 PD들이 MBC노동조합에 속해있는 만큼 준비된 녹화분의 방송이 끝나게 될 경우, 결방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KBS도 동일하다. KBS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은 결방을 선언했으며, KBS2 ‘불후의 명곡’ 국회의원 특집 편은 녹화가 잠정 연기됐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KBS 노동조합 파업을 지지하는 뜻에서 출연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또한 준비된 촬영 분 이후 방영과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 상황이다. ‘추적 60분’이나 ‘다큐 3일’ ‘역사저널 그날’ ‘세계는 지금’ 등도 결방을 확정했다.
사실 두 방송사가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나 2012년 MBC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낙하산 인사 논란을 촉발시켰던 김재철을, KBS는 방송 보도에 대한 청와대 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길환영의 퇴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특히 MBC의 경우 무려 파업일이 약 170일에 이를 정도로 그 문제는 심각했다.
힘든 투쟁 끝에 문제의 사장들은 물러났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 사장으로 올 수 있게 해놔야, 권력에 따라 공영방송이 흔들리는 일을 막을 수 있는데, 뒤이어 취임된 인사들 대부분이 이전 사장들과의 궤를 같이하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긴 파업을 겪었던 MBC는 후유증이 더욱 거셌다. 일을 할 수 있는 PD 및 아나운서, 기자 등 인력유출 뿐 아니라, 사측에서 파업에 가담한 이들에게 보복성 좌천이 이어졌던 것이다. 여러 유능한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이 신사업개발센터에 배치된 이후 MBC 상암동 사옥 앞 스케이트장 관리를 맡게 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MBC와 KBS의 총 파업으로 인한 결방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대부분은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보수 정권 동안 정부의 간섭과 검열로 생채기를 입은 한국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 가는 중이라며 두 공영방송의 연대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시청자들 또한 적지 않다.
파업으로 인한 제작거부가 시작되면서 현재 MBC 라디오의 경우 ‘노홍철의 굿모닝 FM’과 같은 인기 라디오 방송이 결방되고, 대부분의 재방송으로 대체 편성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취자들은 각 게시판을 통해 “파업을 지지한다.” “국민들은 당신들의 편.” “언론이 바로 서는 그 날까지” 등과 같은 응원의 글이 쉼 없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지난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시민 3500명이 참여해 공영방송 파업을 응원했으며, 경남지역에서는 31일 ‘KBS·MBC 정상화를 위한 경남시민행동’이 출범하기도 했다. 지난 9년간 공영방송이 권력의 홍보기지로 전락해간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은 개봉 12일 만에 15만 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모든 움직임은 “잘못된 건 눈치 보지 말고 제대로 된 방송 만들라”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보여주는 동시에, 파업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BS와 SBS는 파업을 통해 방송적폐를 청산하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이를 향한 시청자들의 응원은 무척이나 뜨겁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