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만나게 해준다면서요. 안 왔으니 내 돈 돌려줘요.” 지난달 서울 신월동의 한 길거리에서 40대 남성 A씨가 분을 삭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조건만남을 하겠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20만원을 입금했지만 성매매 여성이 나타나지 않자 환불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대포통장 계좌가 묶였다. 돈을 50만원 더 보내줘야 출금을 할 수 있다”며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돈을 입금하자 이번에는 “수수료가 모자란다”며 다시 입금을 요구했다. 이미 100만원을 건넨 A씨는 돈을 찾아야겠다는 다급함에 추가로 돈을 입금했다. 같은 내용으로 10여차례의 전화통화가 끝난 뒤 A씨는 6,250만원을 뜯겼다.
인터넷에 허위 거래 글을 올려 290여명에게 3억원을 뜯어낸 한중 조직사기단의 한국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개인 일탈범죄로 여겨졌던 인터넷 물품 및 조건만남 허위 게시글 사기가 보이스피싱 금융사기단처럼 조직범행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인터넷 물품판매 및 조건만남을 빙자해 돈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로 사기 조직의 국내 팀장 장모(19)씨와 인출책 이모(20)씨 등 총 9명을 검거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텐트·오토바이·녹즙기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팔겠다거나 조건만남을 하겠다는 허위 글을 올려 피해자 292명으로부터 3억2,700만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실제로 한 20대 여성 피해자는 백화점 상품권을 시중 가격보다 싸게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이들에게 연락했다가 3,000만원가량을 뜯겼다.
일당의 총책임자는 조직원에게 역할을 분담한 뒤 ‘마스크 대신 모자를 활용할 것’ ‘현금 인출 후 택시를 1회 이상 갈아탈 것’ 등을 상세하게 지시했다. 조직원의 일탈을 우려해 신분증 복사본과 부모·연인의 전화번호까지 확보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은 비슷한 신고접수가 이어지자 이들의 범행을 포착하고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피의자들의 신원을 확보했다. 총책임자는 인터넷 접속 위치가 중국으로 판명돼 추가 추적에 나섰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사기의 위험성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조직사기단들이 위험 인식이 낮은 중고거래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며 “중고거래를 할 때는 전화나 문자보다는 대면 및 안전거래(에스크로)를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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