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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가정통신문에서 배우는 노동법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교직원 총파업 따른 안내문서

'불편' 아닌 타인 권리 지키는 일

'우리 위한 일' 생각해달라 당부

'노사=운명공동체' 인식 바탕으로

정당한 쟁의 담담히 받아들여야





얼마 전 노동계는 사회적 총파업에 나섰다. 노동 현안의 속전속결을 요구하며 문재인 정부를 채근했다. 우려도 컸다. 홈런을 치고 골을 넣어도 지나친 세리머니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법이다. 경영계는 지금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소상공인들의 마음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자칫 국민들 눈에 나기라도 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노동판을 바로잡겠다는 문재인 정부라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거창했던 사회적 총파업보다 정작 가슴에 더 와닿았던 것은 어느 초등학교의 가정통신문이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이번 사회적 총파업에 우리 학교 교육실무사님들께서 참여하십니다. 학교도서관은 개방하지만 대출은 되지 않으며 상담실도 운영되지 않습니다.” 학교 직원들이 총파업에 참여한다는데도 글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급식실의 조리사님들께서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시므로 급식은 차질 없이 제공됩니다.” 학교장으로서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윽고 당부의 말이 이어진다. “모두가 잠시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불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사는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위한 일임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난감했던 독일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지만 지하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속이 탔다. 한참을 기다려 지하철에 올랐지만 다시 출발할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때서야 지하철이 쟁의 중이었음을 알았다. 낭패감에 짜증이 났지만 정작 시민들의 표정은 달랐다. 아무 일 없는 듯 신문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활기찬 아침의 출근길 모습 그대로였다.



‘노동’이라는 말만 꺼내도 움츠러드는 사람이 있다. ‘파업’이라는 단어조차 거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명색이 헌법상 기본권이다. 기본권치고 노동3권만큼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게 또 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노동3권과 친해져야 한다. 적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선진국민의 자세다. 국민들에게 당부할 일만은 아니다. 노사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폭행과 협박은 정당화될 수 없다. 파업 중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노조 파괴 행위나 부당노동 행위까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명백한 범죄행위요, 헌법을 뒤흔드는 위법행위다. 좋은 게 좋다며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불편하지만 참아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온 국민이 난리법석을 떨어서라도 비난하고 제재해야 한다. 혹여 쟁의행위를 하는데 공장 유리창 몇 장 깨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회사가 어렵다고 노동조합을 혐오하고 조합원 탈퇴를 요구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지금처럼 험악한 쟁의 현장과 적의에 찬 노사 관계를 방치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바라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최근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심각한 위기라고 한다. 수많은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위태로워졌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노사 관계마저 얼어붙고 있다. 파업도 불사할 태세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법대로’ 노동권을 행사하고 ‘법대로’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라면 막을 방법도 없고 그렇게 할 명분도 없다.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바람이 하나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부디 노사가 ‘운명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동료애’에 기반한 파업임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그래야만 어느 대선후보의 말대로 노동이 당당해질 수 있다. 언제까지고 노동3권이 기본권인 듯 기본권 아닌 기본권 같아 보이는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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