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개봉을 앞둔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제작 더 램프)는 계엄 하의 삼엄한 언론 통제를 뚫고, 유일하게 광주를 취재해 전 세계에 5.18의 실상을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그리고 80년 5월 광주의 한가운데로 힌츠페터를 태우고 들어갔다 온 평범한 소시민이자, 힌츠페터조차 끝내 다시 찾지 못해 익명의 존재로 남은 김사복 씨를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이들이 광주까지 가는 길,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택시운전사의 마음 속 행로를 따라가는 영화 ‘택시운전사’는 실재했던 두 사람의 관점이 가진 생생함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는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 10만원을 준단 말에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로 가는 택시운전사 만섭 역을 맡았다.
사실 송강호는 처음 ‘택시운전사’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이를 고사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림사건 일화를 다룬 영화 ‘변호인’에 출연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 송강호는 또다시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출연 결정에 있어서 “자기검열이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이 얘기의 핵심이나 여운은 제 마음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며 끝내 ‘택시운전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자기 검열은 오히려 ‘소신을 더 확고하게 만든 자기 검열’로 작용하게 된다.
“제가 ‘택시운전사’란 영화를 거절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어요. 전 작품이 들어오면 되게 빠르게 대답을 해주는 편이에요.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배우들처럼 책을 2주 에서 3주까지 가지고 있지 못해요. 그렇게 작품을 보내놓고 , 가슴 속 뜨거움이 점점 커져 가는 걸 느꼈어요.”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80년 5월 새벽 라디오에서 ‘광주에서 폭도들을 진압했다’는 뉴스를 접했고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왜곡된 보도와 통제로 인해, 진실의 눈과 귀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송강호는 “조금의 어떤 마음의 빚이 있었더라면, 정말 작은 빚이라도 덜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꽃잎’(1996), ‘박하사탕’(2000),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등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많다. ‘택시운전사’가 여타의 영화들과의 차별점이라면 피해자나 가해자 입장을 담지 않았다는 점.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광주 사람도, 군인도 아닌 객관적인 제3자의 눈에 비친 80년 광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에 충실한 기자와 기사이다. 택시비를 받았으니, 손님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줘야 한다는 택시기사 만섭의 도리와 고립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야 한다는 기자 피터의 도리에서부터 ‘택시운전사’는 출발한다. 거창한 정치적인 이념과 사회적인 발언 등을 앞세우며 사건과 인물을 대하지 않아 더욱 특별하다.
“택시기사처럼 아주 평범한, 사회의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잘나진 않아도 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거든요. 이들의 건강한 의식이 역사를 지탱하고 만들어간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가 광주의 실상을 파헤치기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비극을 극복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그는 이어 “’택시운전사’의 명장면으로 엄태구가 출연한 장면이다”고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이름 없는 군인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전했다.
“그 장면은 연출이 아닌 실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에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당시 광주 시민 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피해자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가 그걸 잘 담아낸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엄태구에겐 ‘밀정’의 하시모토가 떠올라 ‘하중사’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이어 “이 영화가 군경과 우리 광주 시민 모두, 모든 희생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영화계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배우 송강호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살인의 추억’(2003) ‘효자동 이발사’(2004) ‘변호인’(2013) 등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불러낸 작품에 출연해왔다. 그의 신념과 책임감이 담긴 선택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일개 배우가 감히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냐”며 “어떤 신념 때문에 선택한 작품들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배우로서 어떻게 잘할까를 고민하면서도, ‘예술작품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서도 같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아요. 20대 초반 연극을 할 때부터 ‘의미있는 얘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에 대해 늘 고민 했어요. 관객들이 어떤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작품이면 더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요. 28년을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민들을 놓지 않고 끝까지 쥐고 오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자연인 송강호와 배우 송강호가 끊임없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배우라는 게 스포츠경기의 단거리 주자와 같이 승패가 갈리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배우의 리듬에 따라 이번엔 이 작품, 다음엔 이 작품을 선택하겠다는 건 없어요. 전 그런 리듬보다는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죠. 제가 안고 가야 할 기나긴 여정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겠죠. 믿고 보는 배우요? 책임감보다는 부담감이 있죠. 건강함 부담감이랄까요. 아무리 건강해도 부담감은 부담감입니다.”
2017년 송강호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로 또 한번 시대의 얼굴이 됐다. 그렇기에 그의 선택은 늘 관심의 초점이 됐다. ”아무리 오목한 환경일지라도 우리의 진심은 통하고 받아들여질거라 생각해요. ‘변호인’이 그걸 증명했고, 어찌하다보니 정말 (정권이 바뀌고)이상적인 환경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그것이 곧 결과의 환경까지 바꾼다고는 말을 못하겠어요. 다만 그 부분은 마음이 좀 편하죠. 배우 송강호의 선택이 정치적인 노선을 걷진 않습니다. 참고로 다음 작품은 ‘마약왕’입니다. 하하하“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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