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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

아시아 외환위기 20년 맞아

시장엔 낙관론 넘쳐나지만…

정부 '자만의 함정' 경계하고

근본적 경제체질 개선 나서야





다음달 2일이면 태국 밧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20년째를 맞는다. 그해 여름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로 옮겨붙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 경제의 펀드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하다면서 ‘우리는 동남아와 다르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외신들은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르던 한국 대기업들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고 미국의 일개 주에 불과한 한국이 망하더라도 세계 경제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섬찟한 분석을 앞다퉈 내놓기도 했다. 지금도 국제 금융계에는 10년 주기로 시장이 요동친다는 불길한 예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97년과 2007년처럼 끝에 7자가 붙은 해는 불길하다는 ‘7자 징크스’도 마찬가지다. 1987년의 블랙 먼데이에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다 보니 10년 주기의 위기론이 세를 불리는 분위기다.

작금의 국내외 경제 흐름을 보면 이런 위기설은 모두 호사가들이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다. 세계 경제회복과 풍부한 유동성 덕택에 각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책당국의 적절한 대응에 힘입어 시장과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빅스(VIX)지수가 24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공포지수 하락을 의심하면서 오히려 과도한 낙관심리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신흥국의 통화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통화협정을 준비하고 나섰다. 사전에 해당국의 재정상태 심사를 완료함으로써 위기 발생 시 신속하게 달러를 공급하면서 과거 한국처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반대급부로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낙관론이 팽배한 시장 한편에서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치밀한 준비가 진행되는 셈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세계 각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번엔 다르다’는 증후군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과도한 부채로 이뤄진 호황은 언제나 금융위기로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호황기 때마다 과거와 다르다는 착각을 한다는 분석이다. 이전의 실수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가치 평가에 대한 과거의 규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결국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금융위기의 징후가 나와도 이런 자만의 함정에 빠져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이번에는 다르다, 철저히 준비했다’는 말이 많이 들려온다. 새 정부 역시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고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남겠다며 공언하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거나 새 정책이 발표될 때면 어김없이 이번에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장 한시가 급한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부터 그렇거니와 검찰개혁·재벌개혁·부동산정책 등 국가정책 전반에 걸쳐 일관된 기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차별성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한들 세상은 절대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시장은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세상이다. 더욱이 가계부채나 미국 금리 인상 등 숱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제는 단순히 차별성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근본적인 경제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한 때다. 더 이상 대안없는 정책이 시장의 불투명성을 키우고 혼선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와서도 안 될 일이다. 항상 위기란 적정한 때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발생하게 마련이다. 새 정부는 행여 촛불 민심이라는 자만에 취해 또 다른 위기의 싹을 키우고 있지 않은지 둘러봐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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