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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의 예(藝)-<16>신라 금동반가사유상] 슬픈듯 웃는듯...온화한 미소 속에 담긴 깊은 사유

82.3㎝ 크기로 6세기 후반에 만들어져

일월식보관 등으로 균형잡힌 화려함 추구

고뇌의 심오함·해탈의 경지 보여주는 듯

7세기에 제작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더 푸근한 얼굴에 몸매도 넉넉 '대조'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높이 83.2cm 무게 37.6kg,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에 걸려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작은 그림이지만 속내 모를 오묘한 미소로 마법을 부려 관람객을 붙든다. 어디를 보고, 왜 웃는지, 웃고 있기는 한 건지, 만족한다는 뜻인지 유혹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연애 시작하는 사람 마냥 그 속을 알고 싶어 안달 나고 또 보고 싶게 만든다. 또 다른 명작인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지옥의 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진 시인(詩人)이었으나 따로 떼 크게 제작됐고, 지옥에 몸을 던질지 고심하는 인간의 실존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손에 잡힐 듯 꿈틀대는 근육은 현실의 육신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그의 고뇌는 유한한 삶의 이면을 내다보고 있다.

깨달음의 그윽한 미소를 보여주는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측면 얼굴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모나리자의 미소와 생각하는 사람의 사유를 합쳐놓은 것 이상의 우리 걸작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다. 눈을 내리깐 그윽한 미소는 모나리자가 무색하며, 무릎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빠져든 사색의 깊이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압도한다. 떠올리기 쉽게 하려는 의도로 외국 작품에 빗대 우리 유물을 설명한 것이 부끄럽기는 하나, 그들은 흉내도 못 낼 우리 반가사유상에 대한 자부심은 등등하다.

금동반가사유상의 오른쪽 볼에 살짝 닿은, 날렵하고 긴 손가락은 눈을 감아도 아른거린다. 더러운 것은 만져본 적도 닿은 적도 없는 듯 무구한 손이다. 그 손가락 끝에서 세상이 시작되고 이치가 펼쳐지는 듯하다. 앉은키가 82.3㎝인 제법 큰 불상이지만 허리는 팔에 감길 듯 잘록하다. 가는 허리 위로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옷자락이 착 달라붙어 몸을 더욱 드러낸다. 채색 없는 청동 불상임에도 더없이 화려하다. 천의(天衣) 자락의 어깨 부분이 살짝 들려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느껴진다. 유려하게 몸을 감싼 옷자락은 양 무릎과 의자 위로 물이 흘러넘치듯 반복된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았다.

화려함의 극치는 불상의 머리장식인 보관(寶冠)이다. 탑 모양으로 보이지만 실은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형식이라 ‘일월식(日月蝕)’이라 불린다. 해와 달, 새의 날개, 나무와 꽃잎 등을 단순하게 만들어 꾸몄다. 이런 일월식 보관 장식은 원래 페르시아 왕관에서 유래해 비단길을 따라 동쪽으로 전파됐다. 인도 간다라의 보살상이나 중국 돈황석굴, 운강석굴, 용문석굴 등지에서 이렇게 생긴 보관을 쓴 불상이 다양하게 발견됐다. 통치자의 왕관에서는 지배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불교미술에 사용되면서는 성스러운 존재의 고귀함과 위엄을 상징한다.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은 한쪽 다리만 들어 올린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로 생각에 잠겨있는 형상을 뜻한다. 이는 부처가 되기 전 석가모니인 싯타르타 태자의 일화를 들려준다. 왕자는 12살 때 아버지 숫도다나왕이 지내는 농경제에 참여하게 됐다. 그곳에서 뙤약볕 아래 밭 가는 농부를 봤고, 그 농부의 채찍질에 힘들게 쟁기질하는 소를 보았다. 그리고 그 쟁기 끝에 파헤쳐진 흙에서 꿈틀대며 몸부림치는 벌레와 그 벌레를 물고 날아가는 참새를 봤고, 그 새를 다시 낚아채는 독수리를 보며 충격을 받는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먹고 먹히며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생명이 더불어 행복할 수는 없단 말인가. 결국 석가모니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는 계기가 된 이 사건을 불교에서는 부처의 첫 깨달음으로 본다. 반가사유상은 싯타르타 태자가 품었던 약육강식과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다. 인도에서는 발목을 포갠 자세, 발을 무릎에 올린 자세 등을 ‘생각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방식이 여럿 있었지만 특히 한쪽 무릎을 다른 무릎에 올린 ‘반가사유상’이 5~6세기 중국에서 정형화해 유행했고 우리나라에까지 흘러들어온 게 6세기 후반이다. 이 금동반가사유상을 삼국시대 6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는 이유다. 온화한 얼굴과 가냘픈 몸매, 또 커다란 발을 올려놓은 족좌(足坐)의 연꽃무늬 등이 중국 동위(東魏·534~550)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불상 제작 시기 추정의 근거다.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 높이 93.5cm로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쌍벽’으로 통한다. 국보 83호는 앉은키 93.5㎝로 조금 더 크지만 나즈막한 삼산관(三山冠)을 머리에 썼고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화려한 국보 78호와 달리 83호는 소박하고 단순한 목걸이 정도만 착용했다. 얼굴도 더 푸근하고 몸매도 한층 넉넉하다. 양희정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사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보관, 천의 어깨부분 등 여러 군데의 장식을 통해 전반적으로 균형감 있게 화려함을 추구했다”면서 “반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보관이나 옷을 입지 않은 상반신이 단조로운 대신 하반신에 방점을 두고 무릎과 대좌에서 포개진 하의 옷주름을 올록볼록 볼륨감 있게 표현해 더없이 화려하지만 과도하지 않게 기량을 뽐냈다”고 설명했다. 그 같은 양식 특성에서 볼 때 국보 83호는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불상 양식은 날렵한 몸매에서 점차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형태로 변화한다. 포용력 있는 양감의 석굴암 불상은 이들보다 더 나중인 8세기의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들어온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 전파됐다. 일본의 국보 1호로 꼽히는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은 이들 금동반가사유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고대 한중일의 문화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임에도 국보인 이들 두 금동반가사유상은 정확한 출토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확인된 것은 191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였던 후치가미 데이스케에게서 불상을 입수했고 1915년 총독부박물관이 신설된 이듬해에 기증된 것이라는 정도다. 일제강점기 고미술품 유통상황을 잘 아는 일본인의 증언을 토대로 신라에서 불교가 제일 먼저 전래된 경북 북부 지역 인근의 사찰에서 출토된 것이라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입수된 두 금동반가사유상은 박물관 소장품으로 국가 소유가 됐고 국보로 지정됐다.

이 불상은 비교적 큰 편이지만 두께가 2~4mm로 얇다. 신라의 뛰어난 주조술이 피부처럼 얇은 금동 불상을 제작할 수 있게 했고, 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했다. 마침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최근 보존처리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불교조각실에 전시 중이다. 고뇌의 심오함과 해탈의 경지를 보여주는 미소는 실물을 봐야만 ‘안다’.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옛 장인은 불교 교리에 충실하게 경건한 마음으로 불상의 옷과 손발을 만들었지만 그 얼굴과 표정만은 오롯이 그의 손재주였다. 그윽하게 내린 눈매와 시원하게 곡선을 그리는 눈썹. 반듯한 콧날 아래로 미소가 번진다. 조명의 변주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듯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인상도 달라진다. 고통에 빠진 눈에는 고뇌가 가득하고, 행복을 갈구하는 눈에는 미소가 보인다. 미소를 본 것은 내 마음, 각자의 마음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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