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비정규직 정책 지적에 대해 작심 비판하며 재계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유감을 표명하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지원사격했다.
경제계는 당혹스러워하면서 향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형태로 진행되면서 자칫 일방소통식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만큼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정 장악력을 더욱 높여 공약 이행에 대한 의지도 강조하겠다는 포석이다. 다만 예상을 깬 정부의 강경 기조에 정부와 재계 간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26일 전날 김영배 경총 부회장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 한 축으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위도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앞서 경총 입장을 공개 비판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무실에서 긴급브리핑을 열고 “일자리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매우 핵심적 당사자인 경총의 목소리로는 적절하지 않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효율적이다, 외국에서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기업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국정기획위가 특정집단의 입장을 긴급브리핑 형식을 통해 공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을 짜는 국정기획위에 이어 문 대통령까지 쐐기를 박아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무겁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재계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충돌을 감수하고 예상보다 빨리 재계에 날을 세워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자리 문제가 문 대통령이 내세웠던 주요 공약인데다 정부가 핵심과제로 미는 상황인 만큼 정책 추진력 약화를 우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첫 번째 현장 방문을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간담회로 잡고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며 문제 해결에 대해 열의를 보이는 상황에서 경총이 이를 문제 삼자 ‘반기’를 들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향후 재벌개혁과 대기업 갑질 근절, 최저임금 인상 등 재계와의 충돌이 산적한 만큼 초기부터 재계에 밀릴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박 대변인은 ‘굳이 경총 발언에 대해 따로 브리핑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정규직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갖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어제 (경총이) 이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를 무산시키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재계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민간기업들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영계는 김영배 부회장이 전날 경총포럼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 “할 말을 했다”는 입장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연공서열 위주의 임금체계를 고치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늘리기 힘들고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보편적 인식”이라면서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계는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경총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새 정부의 최대 역점 정책인 일자리 창출은 경제계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첫 단추를 끼우기도 전에 갈등을 빚게 되는 것 같아 곤혹스럽다”면서도 “경영계도 정부정책에 호응해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인데 단지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을 두고 면박을 주면 앞으로 소통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류호·성행경기자 rh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