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 재경직 수석합격(9회)부터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강만수(사진) 전 산업은행장은 대한민국 경제관료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물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한국 경제의 방어 전략을 총괄했다. 강 전 행장의 공과를 놓고 논란은 많지만 2010년 한국은행총재 임명설만으로 외환시장이 출렁일정도로 중량감 있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누구보다 신임하는 경제 참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71세가 된 강 전 행장은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19일 강 전 행장에게 징역 4년, 벌금 5,000만원, 추징금 9,064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지인들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보를 맡고있던 2009년 12월 지인이 경영하는 바이올시스템즈를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선정되도록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신설로 폐지)에 압력을 넣었다. 이 회사는 ‘해조류 에탄올 플랜트 사업’ 부문 국책과제 수행업체로 뽑혀 정부 지원금 66억7,000만원을 받았다.
강 전 행장에게 그나마 다행스럽게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비리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는 무죄로 다. 강 전 행장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장으로서 2011∼2012년 대우조선해양 최고경영자(CEO)이자 비리 의혹에 휩싸인 남상태 전 사장의 명예로운 퇴진을 약속하는 대신 바이올시스템즈에 44억원을 투자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 전 행장이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우조선해양에 투자를 종용하거나 바이올시스템즈를 소개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단순히 ‘명예롭게 퇴진하게 해달라’는 말을 남 전 사장으로부터 들었다고 해서 비리를 묵인해줬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강 전 행장은 남 전 사장의 3연임을 막아달라고 대통령에 보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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