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교육정책 핵심 중 하나는 지나친 사교육 경쟁을 줄이기 위해 현재 중3 학생이 대입시험을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이다. 교육부는 수능 개편안과 함께 고교내신 절대평가 전환 여부를 오는 7월 중 결정하기로 했다. 현재 수능 영어영역이나 한국사영역에 적용되는 절대평가를 전 과목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찬성 측은 현재 줄 세우기식의 비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입시경쟁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절대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절대평가로 바꿀 경우 수능 변별력이 없어져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전면화되고 결과적으로 내신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교육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절대평가 전환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안철수·심상정·유승민 후보도 이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필자는 대입제도 전문가로서 이 정책이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 보기에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상대평가 수능 때문에 사교육이 증가한다는 주장은 원인 분석도 잘못되고 현 사교육 실태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사교육은 대학경쟁전략이다. ‘가장 결정적인 대입전형요소’가 수능이면 수능 사교육이, 내신이면 내신 사교육이, 논술이면 논술 사교육이 대세가 된다. 현행 사교육도 이미 내신 사교육의 비중이 수능 사교육보다 훨씬 더 높다. 수능은 표준화된 시험이라 EBS수능방송으로 대비할 수 있지만 내신은 그룹·개인지도 사교육이 더 유리하다.
둘째, 수능이 지식중심 선다형 평가라서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고교 내신문제는 수능보다 더 지식 중심이다. 심지어 일부 서술형문제마저 지식서술문제에 불과하다. 수능은 1994학년도 도입 때부터 고급사고력·통합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소한 내신문제보다 논리적·비판적·창의적 사고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되는 평가다. 대학별 논술이 폐지되고 수능이 무력화되면 ‘객관적인 학업성취’로서의 사고력 향상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직 학교 내부의 내신등급, 교사의 학생부 기록처럼 부풀리기 혹은 조작 우려가 있는 문서에만 의존할 뿐이다. 교사들은 사고력이 향상된다고 ‘기록’하고 ‘주장’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셋째, 수능이 경쟁을 심화시키고 성적으로 줄 세운다는 주장은 일면 맞지만 현실을 왜곡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수능상대평가보다 내신상대평가가 학생들의 이기적인 성적경쟁을 더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교육부가 발주한 대입제도 개선 연구에서도 내신비중 확대로 ‘고교생활 전체를 시험지옥 속에서 보내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능전형도 진로·계열별로 반영과목을 달리하면 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진로개척과 적격자선발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수능이 학력 성취수준을 진단하는 절대평가여야 고교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주장은 먼저 고교 내신평가에 적용돼야 한다. 대학별 논술도 금지하고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대입전형은 완전히 학생부 중심이 될 것이다. 학생부 중심 대입에서는 변별력을 위해 내신상대평가 9등급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현행처럼 원점수·평균·표준편차·석차등급(이수자수)까지 제공돼 대학이 표준점수를 산정하거나 석차백분율을 도출해 활용할 것이다. 그러면 고교 교육은 더 이기적인 성적경쟁의 장이 된다. 과연 이것이 정상인가.
다섯째,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변별력이 없어져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전면화되고 공정성은 파괴되며 교육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다.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이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고 전형 기준을 알 수 없는 깜깜이전형이며 공정하지 않고 상류층에 유리한 금수저전형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형을 포함시켜 마치 저소득층에 유리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학전형 비율을 뺀 일반 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전형보다 상류층을 더 뽑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포함된 비교과·서류·증빙자료 등이 상류층에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진학정보 확인과 활용에도 더 유리하다. 학생의 능력과 노력·성취가 아닌 부모나 담임교사에 따라 대입결과가 좌우된다면 그것은 ‘현대판 음서’가 분명하다.
최근 일부 언론이 ‘이른바 SKY에는 금수저들이 산다’고 보도했다. ‘SKY’대학의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 미신청자(최상류층 추정)와 9·10분위(상류층) 인원을 합친 비율이 서울대 74.73%, 고려대 72.27%, 연세대 72.56%였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이었던 서울대가 최상류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 다른 주요 대학의 최상류층 학생 비율도 60~70% 수준에 이른다. 대입이 사회 불평등을 반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 불평등을 훨씬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능점수는 학생부 기록과 문서처럼 부풀려지거나 조작될 수 없다. 그래서 최소한 공정하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학교 밖 평가인 수능을 무력화시켜 학교의 교육 책무성을 약화시킨다.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는 학생에 대한 교사 권력을 강화하고 선발에서 대학 입학사정관과 교수 권한 증대에 기여한다. 교육 정상화, 사교육 경감, 불평등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의 패자부활전 기회, 가난한 학생들의 수능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마저 앗아가는 나쁜 정책이다. 대통령공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적용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정책 결정이다. 문재인 정부가 교육정책의 첫출발부터 실패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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