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청와대 불로문 안쪽 정원의 어느 나무 그늘 아래. 저마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권혁기 춘추관장, 이정도 총무비서관, 윤영찬 홍보수석, 그리고 조현옥 인사수석은 자리 배치를 두고 다정한 실랑이를 벌였다. 임 비서실장은 ‘홍일점’인 조 수석에게 문 대통령의 옆자리를 권하고는 “여성의 수가 적을 때 끝에 앉으면 참 보기 안 좋을 때가 있다”며 웃었다.
이날 문 대통령과 청와대 신임 수석비서관들의 산책은 낯설지만 훈훈한 광경으로 화제를 모았다. 정장 재킷을 벗은 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들을 두고 ‘청와대 F4’, ‘외모 패권주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이날 오간 대화에서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사실상 최초의 여성 인사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조현옥 수석이 중심에 놓인 것은 자리 배치뿐만이 아니었다.
◇화제의 중심 ‘남녀 동수내각’=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들에게 “내각 3분의 1을 여성으로 하려면 몇 분이나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문 대통령 스스로 대선 기간 약속한 ‘집권 시 여성 30% 내각, 임기 내 남녀 동수내각’을 의식한 발언이다. 조현옥 수석은 “한 열 분 이상 해야 한다”고 답했다. 임 실장과 조국 수석이 “문재인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여성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자 조현옥 수석은 웃으며 “그 기록을 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현옥 수석의 자신 있는 답은 실제로 그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사수석이라는 직함에는 단순히 청와대에 여성 수석 한 명이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가 공무직이나 공공기관 임원의 인사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청와대 인사수석은 향후 내각 구성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잠이 안 오고 있다”는 조현옥 수석의 농담은 이 막강한 권한이자 의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표현한 것이다.
◇조현옥 수석은 ‘유리천장 브레이커’가 될 수 있을까=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남녀의 숫자만 맞추는 내각 이상을 희망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미의 칠레에서는 남녀 동수내각을 꾸리며 국방장관까지 여성이 맡았다”고 지적했다. 조국 수석과 임 실장이 “기존에 남성이 하는 것처럼 고정관념이 있는 주요 분야에서도 여성을 기용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바람을 가진 문 대통령이 조현옥 수석을 발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시민사회활동가 출신인 조현옥 수석은 여성정책 전문가로 통한다. 조현옥 수석이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으로 일할 당시 기획한 여성안심귀가, 여성안심택배, 여성안전마을 등은 하나같이 실생활에 밀착된 여성정책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당시 여성공무원들의 승진에도 신경 쓴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옥 수석은 “여성들은 인맥과 학맥에 약해 불이익을 받아 왔다”면서도 “저는 오히려 이에 휘둘리지 않는 것을 강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임인 정진철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과 대조적인 포부다. 조현옥 수석 발 ‘유리천장 브레이킹’이 기대감을 모으는 이유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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