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제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빈민·장애인이라도 아들·딸 등 부양의무자가 소득과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지난 2010년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사각지대에 속한 이들은 117만명에 달한다. 이 기준을 완전 폐지 하면 많게는 연간 10조원이 넘는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바른정당·정의당 대선후보는 ‘완전폐지’를 내놓았지만 자유한국당·국민의당 후보는 ‘부분 폐지’로 정했다. 부양의무제 폐지 찬성 쪽은 가족이 부양하지 못할 경우 국가와 사회가 선(先)지원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 민법이 가족 부양을 명시하고 있고 재정 부담 증가와 공적 부양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부양의무제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대선을 앞두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은 주요 정당 모두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바른정당·정의당은 완전폐지 쪽이고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일부 폐지 쪽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권자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는 1촌인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의 부양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수급권자에 대한 보장혜택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수급권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폐지론자의 입장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으로 수급권자 지정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므로 한시라도 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직계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부양의무자 기준 문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수급권자 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저생계비도 가구 규모에 따라 다르게 산정되고 가구 단위로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판정하며 가구를 달리하더라도 1촌의 가족관계가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수급자격 유무를 본다. 가족 단위를 생활 및 운명 공동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의 개념은 축소돼왔다. 과거의 대가족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의 가족은 자신과 타인으로 규정되는 개인 단위보다 조금 확장되고 부모와 자녀 관계를 넘어서면 남이 되는 삭막한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 민법(제974조)에서도 부양 의무가 있는 친족의 범위를 원칙적으로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적어도 1촌에 해당하는 직계가족은 ‘남’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가족 간에 이뤄지는 재산 상속 역시 부양 의무와 연결된 제도로 부양 의무가 없으면 상속권도 부정될 수 있다. 따라서 남이 아닌 가족에게 부양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굳이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인륜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러한 도덕과 법 환경에서 제정돼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수급자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국가 보호에 앞서 책임 있는 가족 부양을 우선으로 한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부양자의무 기준 폐지는 현실적으로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사각지대에 속한 사람의 수는 117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2013년 이후 2015년6월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선정에서 탈락한 사람은 3만7,999명에 이르고 이 제도를 폐지하면 연 8조~10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부양자의무 기준이 폐지되면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적 부양체계의 재편이 전반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점이다. 생계·주거·의료·교육 등 비용 부담의 책임 주체가 개인 혹은 가족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로 전환되는 것이 체제의 일관성 차원에서 재검토돼야 하고 이렇게 되면 이상적인 복지국가로 지목되는 스웨덴 정도로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격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에는 당연히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에 이르는 비용을 우리 국민이 세금으로 납부할 준비도 동시에 돼 있어야 한다. 사교육과 과당 경쟁 등으로 지친 국민의 입장에서는 스웨덴식 보편적 복지체계는 충분히 매력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기주의를 넘어 삶의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 차원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우월하다고 믿는 공동체 의식이 함께 성숙해 있지 않으면 선택되기 쉽지 않다. 베버리지식 복지국가가 영국에서조차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 겨우 꽃피우고 있는 것은 복지국가에도 단계와 수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순히 획일적으로 운영할 경우 여러 형태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 소득과 재산을 빠르게 높이는 등 제도를 보다 신축적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운영하고 있다. 또 장애인 가구와 같이 배려가 더 필요한 곳에는 보다 포괄적인 별도의 지원제도가 운영될 필요성도 있다. 그렇지만 부양자의무 기준 폐지 여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차원 이상의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만큼 대선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판단돼서는 안 되고 신중한 사회적 논의와 고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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