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방송되는 KBS1 ‘다큐 공감’에서는 ‘소리의 벗, 봄길을 걷다’ 편이 전파를 탄다.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나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어린 아이. 아이는 무호흡상태에서 그만 시력을 멀게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김지연양(22살). 1급 시각장애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6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점자책 서편제의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이 마치 자신의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막막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간절함이 만남의 운명을 이어준 것일까, 지연양은 국립 서울맹학교에 다니던 중 시각중복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 국악담당 원진주 선생님(40)을 만나게 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연양. 진학을 코앞이라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는 판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에 엄마아빠는 딸이 걱정되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원선생님은 달랐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 잘 따라오며 판소리를 알아가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제자를 바라보며 스승은 본인도 몰랐던 판소리의 기쁨을 제자를 통해 얻게 되고 제자도 스승과의 소리공부가 눈을 뜬 것 만큼 큰 행복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반인도 힘든 판소리의 창(소리)와 아니라(독백)과정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인 지연양에겐 또 다른 몇 배의 큰 고통이 따라왔다.
바로 판소리의 ‘너름새’ ‘발림’이라 불리는 판소리의 동작 때문이다.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 판소리는 앞을 못 보는 지연이에겐 소리를 깨우치는 득음(得音)과정 뿐 아니라, 태어나 한 번도 본적 없는 다양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표정으로 몸짓으로 연기해야만 커다란 벽에 마주하게 된다.
스승은 빛조차 보지 못해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피기를 수백 번. 미세한 얼굴방향, 어깨올림까지도 수천 번의 고정과 연습을 통해 소리와 발림의 태산을 스승과 제자는 함께 오르기 시작한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걸어온 6여년의 시간. 서로는 서로에게 큰 힘이자 위안이자 꿈이 되어갔다.
명창대회에 몇 번의 낙방의 경험으로 좌절하던 선생은 지연이를 가르치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4수 끝에 2013년 임방울 국악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제자 지연이 또한 정상인도 힘든 수원대 국악과에 판소리를 공부한지 불과 2년 만에 당당히 입학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대한민국 장애인예술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는 등 소리꾼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학과수업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맹인연주단’ 2년 동안 활동하며 예비단원을 거쳐 연수단원으로 활약하며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소리로 큰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기적의 봄날을 함께 누렸던 스승과 제자.
올 봄. 이 두 사람은 지금 보다 더 큰 봄을 맞으려 한다. 이제 장애인대회가 아닌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전국 판소리꾼들과 당당히 실력으로 겨뤄보자는 결심이다.
지연이는 늘 지적을 받아온 취약부분, 고음과 가성을 무사히 성공시켜 소리꾼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시각 장애인이 아닌 ‘소리꾼 김지연’으로 기교의 소리가 아닌 진정한 울림의 ‘명창 원진주’로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함께 동행하는 제자와 스승의 봄길.
장애를 넘어 마음의 소리를 빚어내는 두 사람의 눈부신 소리 길이 꿈길처럼 우리 곁에 펼쳐진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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