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처음으로 공식 발표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협상 방침을 통해 ‘브렉시트 완료 전에는 단일시장 접근권도 보장할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영국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양측이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부터 팽팽한 줄다리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1일(현지시간) 몰타에서 EU의 브렉시트 협상 전략을 정리한 ‘EU 협상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EU의 이익에 따라 EU 집행위원회는 협상(FTA)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지만 협상 완료는 영국이 일단 EU 회원국 지위를 벗어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가이드라인은 또 “브렉시트에 대해 상당한 진전을 이룬 후에야 미래 관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점과 “EU 집행위는 다음 국면(FTA 협상)으로 넘어갈 정도로 충분한 진전을 이뤘는지에 대해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명시했다. FTA 협상 개시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 EU의 몫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EU는 영국 정부가 선호하는 산업 분야별 FTA 체결도 거부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는 회원국과 똑같은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없으며 EU 회원국과 영국의 개별 FTA 협상도 가능하지 않다. EU는 영국이 단일시장에 남기로 결정한다면 EU 시민권자의 자유로운 이민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투스크 의장은 이날 가이드라인과 함께 회원국에 보낸 편지에서 “(영국과) 협상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실패할 경우의 상황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청했다. ‘EU 협상 가이드라인’은 이날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에 전달됐으며 다음달 29일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확정돼 통과될 때까지 수정 절차에 들어간다.
외신들은 EU와 영국 간 브렉시트 협상에 대한 견해차가 뚜렷하게 드러난 만큼 협상 의제를 정하는 문제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AP통신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정상들이 ‘브렉시트 협상 완료 때까지 FTA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밝힌 것과는 차이가 있다며 다소 유연성을 뒀다고 분석했다.
한편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31일 영국 연방정부에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투표 승인을 공식 요청했다. 스코틀랜드는 교역의존도가 높은 EU의 단일 시장에서 이탈하기를 원하지 않고 있어 독립 후 EU 재가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요청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 추후 양측 간의 갈등도 격화될 전망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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