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년을 남편으로 맞았으나 북한 정권에 의해 사랑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55년을 그리움으로 지켜온 루마니아 여인이 있다. 소설가 권현숙씨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루마니아의 연인’에 등장하는 ‘제오르제따 미르초이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필자는 지난 2월19일 미르초이우의 사연이 깃든 루마니아를 공식 방문했다. ‘동남유럽의 진주’로 불리는 루마니아는 이 지역에서 우리나라와 유일하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우방이다.
이번 루마니아 방문시 대통령·총리 그리고 외교장관을 모두 만났는데 이들은 모두 15년 만에 이뤄진 한국 외교부 장관의 방문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양국 간 실질 협력 강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또 북핵 문제의 엄중성과 시급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루마니아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 동참 의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을 예방하며 찾은 ‘코트로체니 대통령궁’은 루마니아의 마지막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영빈관으로 사용한 곳이다. 그가 가장 존경한 이는 바로 김일성이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 주체사상에 감화를 받아 이를 모방한 철권통치를 했다. 전국적으로 도청 장치를 설치해 국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으며 반대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차우셰스쿠식 독재의 절정은 ‘김일성 주석궁’을 본뜬 ‘인민궁전’ 건설이었다. 12층 건물에 1,100개의 방으로 이뤄진 인민궁전은 미국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로 축구장 면적의 47배에 달한다. 한편으로는 공항으로 이어지는 지하 비밀 터널, 천장이 열리는 실내 헬기장, 그리고 독살을 방지하기 위한 환풍시설 등이 설계돼 있어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는 독재자의 끝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루마니아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이 투입된 인민궁전 건설은 한때 ‘유럽의 빵 공장’으로 불리던 루마니아에 극심한 식량난을 야기했다. 1984년부터 이어진 공사로 루마니아 국민들은 5년간 굶주림에 시달렸다. 성난 민심은 공산 독재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시민혁명으로 이어졌다. 결국 차우셰스쿠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크리스마스 날 인민궁전의 완공도 보지 못한 채 부인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초호화 천연 대리석과 수정 샹들리에로 치장된 인민궁전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매년 수㎝씩 가라앉고 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흐름은 되풀이된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rhymes)”고 했다.
루마니아의 지나온 역사는 오늘날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989년 시민혁명으로 독재 청산과 체제 전환에 성공한 루마니아는 오늘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 역내 평화와 안정에 적극 기여하고 있으며 연 5%대의 고도 성장으로 EU 회원국 중 가장 역동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에서 억압받고 굶주리고 피폐했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이제 당당한 EU 회원국 시민으로 자유롭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북한은 주민들의 생활고와 인권을 무시한 채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집착하며 지난 한 해에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려 26차례나 위반했다. 최근에는 국제법적으로 절대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해 지도자의 형인 김정남마저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의 규탄 대상이 되고 있다.
북한은 이제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역사의 흐름은 되풀이된다는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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