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한 최신 전투함이 있었다. 화력이 세계 최강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한 달간 항해훈련을 갔다 오면 승무원의 3분의1이 전역신청을 낸다. 또 한 달간 항해훈련을 갔다 오면 나머지 반이 또 전역신청을 낸다. 바로 이 시점에 새 함장님이 취임한다. 취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하나 발생한다. 이제 이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4대1의 경쟁을 뚫어야만 한다. 도대체 이 함장님은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취임하자마자 300명의 승무원을 1대1로 함장실로 부른다. 그리고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자네가 현재 만족하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자네가 현재 불만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자네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만족, 불만족, 개선사항, 1인당 한 쪽, 300쪽의 노트가 작성되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왜냐고요? 지금부터는 정답보고 시험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봐서 말이 안 되는 것은 그냥 건너뛰면 된다. 들어보고 말이 되는 것은 바로바로 실천에 들어간다.
“함장님! 배 안의 화장실 청소는 계급에 관계없이 똑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이야기야. 바로 실시.” 함장님은 이 이야기를 해준 사병이 누군지를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두 사람만 무덤까지 안고 가는 거다. “지난번 화장실 청소 건 말이지, 이 상병 아이디언데 훌륭하지 않나?”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 이 상병은 바로 죽고 만다. 조직에서 파묻어 버린다. 제안한 이 상병과 함장 딱 두 사람만 무덤까지 안고 간다. 가끔 보면 인풋 아웃풋 비율이 1대1인 상사들이 있다. 들어오는 대로 바로 나간다. 이거 모르고 한 번 말하지 절대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신중한 군주에게 신하들은 진실을 털어놓는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하는 말이다.
리더가 소통하는 방식은 이렇게 해야 된다. 듣고 또 듣고 300번 듣고 딱 한 말씀하시는 거다. 왜냐고요? 리더가 하는 말은 곧 결론이기 때문이다. 회의 중에 제일 재미없는 회의가 있다. 뭘까요? 바로 이미 결론이 나 있는 회의다. 리더가 먼저 발언하기 시작하면 다들 리더의 뜻대로 가기 마련이다. 이런 회의는 하나마나 할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부하에게 읽히지 말라.” 한비자가 하는 말이다. 리더는 절대로 먼저 발언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회의가 아니라 그저 앵무새들의 향연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회식자리에서 메뉴를 가장 마지막에 시켜야 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이 전에 내 강의를 열심히 듣던 한 최고경영자(CEO)가 이 함장 이야기를 듣고 나서 회사에 가서 바로 실천을 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하들이 제대로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시원시원 답을 안 하더라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질문했느냐고 물어봤더니 시간이 좀 바빠서 3명씩 불렀다고 했다. 이게 패착이다. 누가 속에 있는 말을 하겠는가. 만약에 1명씩 불렀는데도 제대로 이야기 안 한다면 그 직원은 사실 좀 신통치 않은 자다. 리더와 독대하는 자리에서도 제대로 속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스피치라는 말까지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했다고 해서 그 배가 하루아침에 정상화됐던 것은 아니다. 부하가 써 올린 보고서가 신통치 않거나, 일 처리가 미숙했을 때 이 함장님은 다시 세 가지 질문을 이번에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첫째, 나는 내 부하에게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둘째, 나는 내 부하에게 교육훈련을 적절하게 시켰는가? 셋째, 나는 내 부하에게 시간자원을 충분하게 줬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리고 그에 스스로 답하고 나서 그 부하를 평가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 중 무엇이 제일 중요한 걸까. 당연히 지시사항이다.
리더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 부하들은 내가 전달한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 나중에 물어보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잘 못 들은 사람의 책임인가. 아니면 잘 못 말한 사람의 책임인가. 당연히 명령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리더의 책임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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