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두 여성이 범행을 앞두고 수차례 사전연습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경찰은 김정남 피살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베트남·인도네시아 수사 당국과 공조를 꾀하는 한편 사건을 계획한 아시아계 남성들을 쫓고 있다.
17일 일본 NHK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말레이시아 경찰이 체포한 두 번째 여성 용의자는 지난 2일 말레이시아로 입국하기에 앞서 15일 경찰에 체포된 베트남 여권 소지 여성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한 1992년생 시티 아이샤는 16일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한 호텔에서 체포됐다.
다만 여권명 ‘도안 티 흐엉’으로 알려진 베트남 여권 소지 여성은 현재 본인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의 가방에서는 독극물이 든 병이 발견됐으며 이 물질이 살해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성주일보는 전했다. 독극물로는 청산가리보다 강한 복어 독이나 피마자 식물 씨앗에서 추출할 수 있는 리신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 여성 용의자 2명은 경찰에 “아시아계 남성을 1~3개월 전 알게 됐으며 ‘여행객들에 장난을 치는 동영상을 촬영하면 미화 1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번 연습하며 정확히 얼굴에 액체를 분사하는 법을 익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추가로 조사해 이들이 사건 발생 전날에도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을 밝혀냈다. 현지 매체 더스타 온라인은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이들이 범행현장 주변을 서성이거나 청사 곳곳을 살피면서 장난을 치듯 서로에게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그들은 공항 출국장에서 (범행을 결행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여성들과 함께 있던 남성들이 이번 사건의 ‘두뇌’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말레이시아 경찰은 과학기술혁신부(MOSTI) 산하 화학국에 부검 샘플을 전달해 김정남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살피고 있다. 화학국의 최종 분석 결과는 주말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들이 타국 여권을 보유함에 따라 3국 간 수사 공조체제도 가동되고 있다. 베트남 외교부는 현지 언론 등에 “말레이시아와 긴밀히 협조해 김정남 사건의 정보를 밝히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인도네시아도 시티 아이샤가 자국민임을 확인하며 본격적인 공조체제를 가동했다.
한편 요미우리신문은 피살된 김정남이 올해 초 친구에게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라며 신변의 위협을 느껴왔다고 보도했다. 중국인으로 알려진 이 지인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김정남이 ‘나는 더 이상 정치에 흥미가 없는데 정은은 믿지 않는 것 같다. 나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고 신문에 전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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