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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않은 길> '강성노조+구시대 리더십'이 제조업 위기 불러

■송호근 지음, 나남 펴냄

노조 파업으로 멈춰선 현대자동차 울산3공장 /서울경제DB






귀족노조. 이 네 자의 단어는 한국의 노동운동,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의 존재를 위협하는 프레임으로 활용돼 왔다. 숱한 대기업 노조 가운데서도 현대자동차 노조는 대다수 언론, 그리고 보수 논객들에게 귀족노조의 표상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펼쳐지고 사물인터넷의 대중화가 눈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앞에 한국 경제가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향한 곳은 현대차(005380)다. 송 교수는 신간 ‘가보지 않은 길-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나남 펴냄)에서 귀족노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귀족노조’ 프레임에 기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그러나 반세기만에 혁신의 늪에 빠진 제조업을 진단할 최적의 장소로 꼽힌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송 교수는 중산층에 편입되며 계급정체성이 흐려지자 호전적 실리주의에만 매몰된 노동조합과 이를 방조하고, 함대형 리더십이라는 구태의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영진을 위기 원인으로 꼽는다.

과거 현대차 노동자들의 성취동기는 세대적 유대, 동료애와 버무려지며 국가와 기업의 명분에 헌신하는 재료가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 대량해고 사태 후유증으로 남은 트라우마는 노사관계가 대립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노조는 사측의 주요 결정에 완강하게 저항하며 더 많은 보상, 더 적은 근로시간, 더 긴 정년만을 고집했고 생산성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송 교수의 주장이다. 노동자들로선 노동강도를 죄고 푸는 권한을 가진 노동조합의 편에 줄을 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노조 집행부는 점점 더 내부자 연대에 천착했다.



경영의 문제도 심각했다. 거래비용 축소를 위해 관리체계를 수직적으로 통제하는 이른바 ‘함대형 생산체제’는 발 빠른 추격에 최적화된 경영모델이었다. 문제는 불확실성의 시대, 시대적 요구에 맞게 기업구조를 바꾸고 개혁해야 하는 현재에는 구태의 모델이 적합하지 않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조직의 목표를 세우고 공유하는 데도 역부족이었다.

결론에 이르러 송 교수는 시민성의 회복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기업 역시 시민의 일원으로 시민권을 갖고 있음에 항상 긴장하고 시민의 책무와 공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조직체로서 ‘기업시민’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경제적 이익 확보에 치중하는 노동조합에는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시장 충격을 흡수할 복원력을 배양하는 것이 경영전략의 최우선 덕목이고 그에 맞는 지배구조 모형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에 노조가 보폭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민성 회복과 노사합심이라는 그의 제안이 선진국이 ‘가 본 길’만 따라 달렸던 한국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는 구체성이 떨어진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송 교수가 쓴 이 책은 몇 가지 결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가 만난 인터뷰 대상자 50명이 어떤 방식으로 선정됐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들이 현대차 임직원에 대한 대표성을 지닐만한 표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경영과 노동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쌍방과실이라면, 양측을 동일한 비중으로 진단해야 했으나 이 책은 노동조합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1만9,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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