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앞에서는 다정하지만 일할 땐 누구보다 냉철한 검사 박정우에서 살인범 누명을 쓴 죄수 로 열연한 지성의 다양한 스펙트럼 연기, 극과 극의 성격인 쌍둥이 형제 ‘차선호’-‘차민호’ 1인 2역에 사이코패스까지 소름 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엄기준의 역대급 악역 연기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23일 첫 방송된 ‘피고인’은 딸과 아내를 죽인 살인자 누명을 쓴 검사 박정우가 잃어버린 4개월의 시간을 기억해내기 위해 써 내려가는 처절한 투쟁 일지이자, 지독하고 냉혈한 충격적인 악인 차민호를 상대로 벌이는 강렬한 복수 이야기.
‘피고인’은 선악 대결 스토리를 초반부터 내세우며 기선제압을 했다. 선으로 대표되는 박정우 검사가, 악의 대표주자 차민호에게 일격을 당함을 알리며, 빠른 전개와 스피드 있는 연출로 큰 볼거리를 선사한 것.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눈을 떴을 뿐인데 착한 주인공이 감옥 안 사형수가 되었고, 더욱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4개월간의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펼쳐지자, 시청자들은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 박정우와 진실을 덮으려는 자 차민호의 뜨거운 대결을 두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네티즌들의 질타도 이어졌던 게 사실. 전체 16부작 중 아직까지는 막무가내 전개는 아니기에 이 부분은 좀 더 두고보기로 하고 히든카드를 짚어본다.
‘피고인’에게 던져진 숙제는, ‘재벌’의 탈을 쓴 절대 악인과 누명을 쓴 선량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끌어갈 수 있을지 여부.
이미 딸과 아내를 살해, 유기한 죄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박정우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향후 스토리의 핵심축이라면, 정우를 둘러싼 엄기준·권유리·오창석의 2인자 콤플렉스가 어떻게 발현되는지가 특별한 감칠맛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악마 ‘차민호’를 유일하게 사랑하는 천사 같은 엄마 ‘명 여사’(예수정), 차선호의 부인이자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인 나연희(엄현경)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다.
외골수 같은 정의감으로 검사로서의 신념을 지킨 정우의 승승장구 앞길을 막은 이는 악인 차민호가 아닌, 2인자 콤플렉스를 지닌 차민호이다. 차민호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 죄(?)로 그의 행복은 산산조각났다. 그렇게 2인자 콤플렉스의 덫에 걸려들었다.
2인차 차민호는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만 아끼는 아버지에 눌려 비뚤어진 행실로나마 주목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그의 인생은 늘 평탄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1인자를 집어삼키는 또 다른 패를 들고 나와, 절대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처럼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간다. 죄를 덮기 위한 죄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기에.
그런 정우에게 또 다른 2인자가 다가온다. 정우를 끔찍한 덫에서 꺼내 줄 생명줄이다. 1인자의 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서은혜(권유리)가 정우에게 내려온 동아줄이었던 것.
완벽한 변호사가 되고자 용쓰지만 현실은 법정 내 못 말리는 쌈닭으로 통하는 국선 변호사 서은혜에게 박정우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패배를 안긴 검사이자, 꼭 한 번은 이기고 싶었던, 그러나 쉬이 오를 수 없었던 산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승부를 넘어 긍정적으로 발현 될 서은혜의 2인자 콤플렉스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 할 듯 하다.
여기서 갈등 관계가 끝나면 드라마의 풍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박정우의 15년지기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검사 강준혁(오창석)의 반격이 예고된 상황. 정우와는 가족만큼 각별한 사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손여은 )마저 정우에게 빼앗기며, 남 몰래 열등감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위험을 담보로 해야 하는 ‘정의’의 힘을 따르기보다는 앞 날을 보장해주는 ‘권력’의 힘을 믿는 이다.
명백한 증거들 앞에 친구이기보단 검사의 패를 들이미는 준혁은 정우의 무죄를 주장하는 의지 백배 변호사 ‘서은혜’와 충돌을 빚으며 양보 없는 연기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오창석과 권유리의 완급조절 연기가 제대로 발현 될 수 있다면 더더욱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듯.
‘피고인’의 조영광 감독은 “더 이상 추락할 곳 없이 곤두박질 처졌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진실을 위해 투쟁하는 박정우 캐릭터를 통해 희망과 정의의 승리를 염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참된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고 밝혔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바짝 따라붙는 KBS2 ‘화랑’의 시청률, 30일 첫 선을 보이는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과의 3파전에서 선두 자리에 설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 볼 일이다. 희망적인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으면 드라마가 전하고자 했던 ‘정의의 승리’ 의미 역시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조영광 감독이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한편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30일 밤 10시, 제3회가 방송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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