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우의 이런 이미지는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배성우는 7년 동안 개봉작 기준으로만 3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 안에서 매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연극무대를 거쳐 충무로에 입성한 많은 배우들의 초반 필모그라피가 건달 아니면 형사로 채워지는 것과 달리 배성우는 같은 역할이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로 34편의 필모그라피를 다른 캐릭터들로 채워나간다.
배성우의 진짜 매력은 ‘배우들이 좋아하는 배우’라는 충무로의 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처음 만나면 호탕한 목소리와 함께 던지는 은근한 눈빛이 사람을 절로 기분 좋게 만든다.
“배우들이 좋아하는 배우라는 말. 또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배우라는 말이잖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남자배우말고 여자배우들이 좀 찾아줘야 되는데. 저도 멜로나 신파 이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연극할 때도 그런 배역 많이 했고. 근데 남자배우들하고만 얽히니 저런 역할을 해볼 기회가 없네요. 하하.”
배성우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물으면 유쾌하고 쾌활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집으로 가는 길’의 ‘추과장’처럼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공무원의 캐릭터를 떠올릴 수도 있다. 배우로서 배성우는 이 극과 극의 이미지를 모두 능청스럽고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그가 충무로의 떠오르는 ‘다작의 아이콘’이 된 이유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항상 비슷해요. 어떤 작품이건 간에 매력있는 작품, 매력있는 캐릭터. 그것이 가장 큰 이유죠. 물론 연극을 하다 영화로 넘어온 초반에는 누구나 그렇지만 뭐라도 해야하니까 그런 것을 염두에 둘 겨를도 없이 그저 찾아주시면 감사해하며 출연하긴 했어요.”
“‘다작의 아이콘’이라고 하는데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다작을 한 편은 아니에요. 그러다 2014년 정도에 갑자기 많이 찾아주시게 됐죠. 2015년부터는 조금씩 비중들이 늘어나면서 그렇게 많이 출연하지 못했고 대부분 2014년에 촬영한 영화들이 2015년에 개봉을 하게 됐죠. 2016년에는 딱 두 작품만 찍었어요. ‘더 킹’하고, 앞으로 개봉할 ‘꾼’하고.”
처음 배성우를 만나게 되면 영화와 달리 훤칠한 풍채와 중후한 목소리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달리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유쾌한 말재간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좀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영화에서 보던 가벼운 모습과 달리 배성우라는 사람이 정말 생각이 깊고 지적이라는 점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영화 ‘더 킹’의 제작보고회 때도 있었다. 배성우는 영화 속에서 맡은 역할 중 ‘양동철 검사’라는 캐릭터가 가장 출세한 역할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안 보여도 의외로 지적인 역할을 많이 해왔고, 연극할 때는 의사 역할 단골이었다”며 지적인 집안에서 품위있게 자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는 그다지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막 놀러다닌 것도 아니고 정말 평범하게 자랐어요. 제가 원래 지적인 캐릭터라고 한 말이 좀 웃기게 들릴 수 있지만, 아버지도 학벌이 좋으셨고 어머니도 출판사에서 일하시던 분이라 집에 책도 많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이죠.”
농담이라고 손을 휘젓지만, 실제로 배성우는 정말로 지적인 캐릭터다. 동생이 아나운서 배성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외조부가 1919년 3·1운동 당시 청주에서 만세 시위를 주동한 독립운동가 신영호 선생이라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답게 배성우는 ‘더 킹’에서 그가 연기한 ‘양동철’에 대해서도 확고한 역사적 인식을 지니고 연기를 했다. 그런 점들이 배성우라는 배우의 연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힘이자 원동력인 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 한강식(정우성 분)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결국 친일파에서부터 왔다고 역사강의를 하잖아요. 사실 이것은 평소에도 꾸준히 느끼던 부분이에요. 그래서 울컥하기보다 그 대사가 참 씁쓸하게 들리더라고요. ‘더 킹’이라는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대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었어요.”
“저는 ‘더 킹’과 같은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업시간에 글을 통해 배운 독립운동보다, ‘더 킹’과 같은 영화를 보면 바로 그 상황이 느껴지잖아요. 우리 역사가 그렇잖아요.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이념으로 몰아붙이던 야만적인 시대도 있었고. 그런 현실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씁쓸하기도 하고. 지금 시대가 개인이 폭탄을 투척한다고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저는 배우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그래서 ‘더 킹’과 같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