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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헌재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됐고 이제 대통령직에 대한 최종 명운은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하는 공식적 절차로 넘어가게 됐다. 헌재 심리과정 중에는 다소 견해가 분분하지만 대통령은 중도사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기본체제를 받치고 있는 여러 정치제도들과 사회구조의 안정성을 보증하기 위해서다.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 박 대통령의 행위는 사사로운 것들보다 대부분 큰 틀에서 볼 때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작용으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최고의 국가작용이다. 현재 특검의 수사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사선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이번 수사의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일부 대권 주자들이 이번 촛불집회에 편승해 대통령의 중도 사퇴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대통령 당선 고지를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헌법상 대통령의 사퇴는 본인 의사에 의하거나 탄핵뿐이다. 이제 헌재의 탄핵 심리와 헌법적 결정이 그 절차 중에 있으므로 대권 주자들은 더 이상 사회혼란이 야기되지 않게 국민들을 추동해서는 안 된다. 절차적 민주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진행되는 절차들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중도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배치된다. 박 대통령 또한 이 상황에서 만약 중도사퇴한다면 현재 대통령과 관련해 거론되는 모든 난무하는 주장들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된다. 우리 헌법과 법률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하고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집회에서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하더라도 현대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법치주의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일부 국민들의 집회요구만으로 현행 헌법적 질서를 뒤바꾸거나 누군가에게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거나 박탈을 강요한다면 이것은 17세기 이전의 서구 국가들에서나 있었던 일이지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하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번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각종 집회를 과거 그리스인들이 열망했던 집회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이제부터 정치적 문제는 각 정당들 차원에서 해결하고 헌법과 법률적 문제는 헌법재판소에서 담당할 수 있게 맡겨 둬야 한다.

어떤 집단도 정당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대리할 수 없다. 특히 단순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넘어서서 어떠한 집단도 헌재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결과를 몰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정치적 역할이 증대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국민 전체의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헌법과 법률을 넘어서는 자기주장들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사퇴에서 더 나아가 총리 사퇴에까지 거리정치의 구호로 지속하게 된다면 사회혼란은 더욱 극심해지고 국민들 간의 이념적 갈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총리 등 국가 최고 헌법기관의 줄사퇴로 발생할 국정 공백 등으로 인해 국민의 피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제까지 극단적인 이념적 분열이 크지 않았는데 그것은 각 정당들이 이러한 다양한 국민의 이념적 논쟁들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과 역할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 정당들은 이와 같은 제도적·문화적 역할 기제가 부재한 상황이다. 각 주요 정당들은 정치적 이익의 실리만 챙기고 차기 정권 획득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의 원대한 정치·사회 상황의 비전도 설계해주기를 바란다.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은 헌재의 공정하고 민주적인 법률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도록 맡겨두고 우리 국민들은 이제 그 결과를 겸허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국민의 또 다른 헌법적 책무인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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