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개봉한 류훈 감독의 영화 ‘커튼콜’은 루저(Loser)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대학로 지하 소극장에서 욕정에 눈이 벌건 관객들을 상대로 삼류 에로연극이나 하던 루저들이 정통 연극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에 도전한다. “벗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정통파 ‘햄릿’ 말이다.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삼류 에로연극이 아닌 제대로 된 연극작품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루저들의 웃기면서도 처절한 도전기를 그린 영화 ‘커튼콜’의 배급상황은 실로 처참했다. 개봉 첫 날인 8일에는 전국 80개 스크린에서 총 105회 상영된 것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상영시간 대부분은 오전 10시 이전, 혹은 밤 11시 이후에 집중됐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캐머런이라고 해도 이런 불리한 배급조건에서는 관객을 동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커튼콜’이 이런 배급상황에 놓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커튼콜’의 규모와 이야기 때문이었다. 홍보비까지 포함한 총 제작비가 5억 원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규모만 놓고 보면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정작 이야기는 루저들이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도전하는 상업적 드라마 트루기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튼콜’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는 ‘상업적 이야기’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독립영화’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했고 일주일 동안 전국 5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어떤 분들은 ‘커튼콜’을 독립영화라고 하고, 어떤 분들은 상업영화라고 해요. 하지만 전 그냥 제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만든 것 뿐이고, 영화를 만드는 제 입장에서는 ‘커튼콜’이 상업영화인지 독립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상업영화판에서는 자본이 적게 들어갔으니 독립영화라고 밀어내고, 독립영화판에서는 이런 상업적인 영화를 어떻게 독립영화라고 하냐고 또 밀어내요.”
그래도 ‘커튼콜’은 기꺼이 발품을 팔아서라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20대 시절 ‘커튼콜’ 속 등장인물들처럼 무명배우로 시간을 보냈던 장현성과 박철민은 무명의 후배배우들을 이끌며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의 합일을 만들어냈고. 단편영화 시절부터 충무로의 촉망받는 이야기꾼이었던 류훈 감독은 자신의 실패담을 ‘커튼콜’에 녹여낸다. 류훈 감독과 배우들이 바로 루저들이었기에 ‘커튼콜’에는 그 어떤 영화에도 없는 진한 밀도의 진정성이 녹아들어있다.
“지금까지는 상업영화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영화를 했어요. 당연히 빨리 영화감독으로 데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 결과가 ‘비밀애’였어요. 그리고 그를 통해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연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죠. 그래서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보기로 했어요. 영화산업에서 원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 규모가 작아도 알찬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그 결과가 ‘커튼콜’이에요.”
류훈 감독은 단편영화시절 ‘임성옥 자살기’와 ‘죽어라지마’ 등의 수작 단편을 남겼고,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온 충무로의 촉망받던 이야기꾼이었다. 하지만 2010년 류훈 감독이 연출한 데뷔작 ‘비밀애’는 그런 류훈 감독의 커리어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졸작이었다.
물론 ‘비밀애’의 참담한 실패에는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류훈 감독이 처음부터 연출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 찍다가 기존의 감독이 하차하며 엎어지게 된 상황에서,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했던 류훈 감독이 대타로 투입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영화는 애초의 시나리오와 다른 방향으로 촬영이 되고 있었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영화의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다. 이후 류훈 감독은 잠시 영화현장을 떠나 성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가서 스승으로 성결대학교 영화영상학과의 발전을 만들어냈다.
“‘비밀애’가 끝나고나서 제 스스로가 ‘루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젠 내가 영화를 한다고 해도 아무도 투자를 안 하겠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선생인 제가 만든 영화가 ‘비밀애’라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고요. 물론 ‘비밀애’는 제가 처음부터 관여한 영화는 아니지만 감독에 제 이름을 올린 이상, 저는 어떻게든 그 영화에 대해 책임을 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정말 자격지심에 자학도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루저들이 과연 성공을 해야만 바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전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루저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어떤 인생에 장애물이 없겠어요? 그런데 이왕 시작된 인생이니 죽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자신이 꿈꾸던 멋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다면 결국 그것만으로도 그 삶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커튼콜’은 저를 위한 위안이기도 해요. 이번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리고 나중에도 제가 형편없는 감독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죠.”
사실 루저들을 그린 수많은 영화들은 결국 루저들이 온갖 사회적 편견과 멸시를 뚫고 그래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추구한다. 하지만 ‘커튼콜’은 해피엔딩이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 새드엔딩이다. 삼류 에로극단 출신의 스태프와 배우들은 온갖 돌발상황으로 점점 망가지는 연극을 결국 멱살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공연해내는데 성공하지만, 그 누구도 엉망진창으로 이야기가 꼬여버린 이 연극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을 것이고 성공적인 무대라고 박수갈채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삼류 에로연극을 하던 루저들에게는 정식으로 큰 무대 위에서 ‘햄릿’이라는 연극 한 편을 올릴 수 있었다는 그 자체가 패배의식에 찌들은 삶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류훈 감독의 말처럼 꼭 성공해야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성공은 못할지언정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그들의 땀과 노력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 말이다.
“재수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고생하고 자란 캐릭터는 아니에요. 부모님 잘 만나서 잘 컸고, 밥을 굶고 살아본 적도 없어요. 지금도 대학에서 교수님 소리 들으며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있고. 그래서 이런 제가 루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하면 위선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너 같은 놈이 루저에 대해 알긴 아냐고. 근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콤플렉스나 아픔이 있고 이것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루저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모두가 출세하고 성공한 삶을 꿈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루저들의 끝은 그렇게 찬란하지 않아요. 그것이 현실이에요. 하지만 끝이 화려하게 빛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을 삼류였다고 폄하할 수 있는 걸까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해 박수를 받을 자격도 없는 것일까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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