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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판도라' 100만 촛불의 민심을 직격…천운이 함께 한 재난영화

한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먼저 오랜 아이템 개발과 집필을 통해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나면, 배우와 스태프들을 구성해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촬영하고 후반작업을 통해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을 투입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는 다시 관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배급부터 홍보까지 다시 한 번 치열한 전쟁을 펼쳐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 흥행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물론 12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인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 역시 마찬가지다. 2012년 전국 450만 관객을 동원한 재난 블록버스터 ‘연가시’를 연출했던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에서는 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해 폭발하는 대재난을 그려낸다. 영화의 스케일이 큰 만큼 투입된 제작비와 제작기간 모두 막대한 수치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영화 ‘판도라’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임박하면서 내부에 갇혀버린 재혁(김남길 분)과 그의 동료들 / 사진제공 : NEW




영화 ‘판도라’에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가 난 원자력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는 재혁(김남길 분)을 보고 울부짖는 연주(김주현 분) / 사진제공 : NEW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며 대한민국의 초유의 재난을 맞이한다는 ‘판도라’의 이야기는 사실 2011년 전세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의 이야기를 굳이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재탕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판도라’의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어두운 그림자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 위기에 처했음에도 정보를 은폐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이나, 원전 인근에 살고 있는 일부 주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간에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 원전 폭발이 임박하자 하청업체 직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부터 차단하는 모습들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세월호 참사 당시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 참사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했던 탓일까? 박정우 감독은 강하게 부정했지만 ‘판도라’는 영화 제작과정에서 투자자들의 투자철회에 제작 완료 후에도 개봉이 지연되며 정치권의 외압이 있다는 뒷말이 충무로를 떠돌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영화 흥행은 하늘이 만들어주는 것인지, ‘판도라’는 이 개봉지연으로 인해 오히려 박정우 감독조차도 예상치 못한 대운을 맞이하게 된다.

‘판도라’에서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대재난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청와대 내부에서 펼쳐지는 대통령(김명민 분)과 국무총리(이경영 분)의 치열한 대립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재난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원전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는 총리는 재난을 축소하고 은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경험이 미숙한 대통령을 압박한다. 총리에게 밀려 재난대책의 제 일선에서 밀려났던 대통령은 결국 국민을 위해 재난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대국민담화를 통해 과감하게 국민들의 도움을 요청하며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되찾는다.

영화 ‘판도라’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재난을 두고 대립하는 국무총리(이경영 분)와 대통령(김명민 분) / 사진제공 : NEW


영화 ‘판도라’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소식이 알려지자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시민들의 모습 / 사진제공 : NEW


그리고 ‘판도라’에서 김명민이 보여준 이런 이상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100만 촛불의 민심을 직격한다. 현실정치에서는 대통령이 일개 사조직에게 휘둘려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수많은 부정부패를 묵과했다는 의혹이 나도는데, 영화에서는 초유의 재난에 맞서 용기를 내는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한다. ‘판도라’의 개봉이 지연되면서 만들어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현실정치로 인한 시너지 효과다.

물론 ‘판도라’라는 영화는 단지 천운을 받아 현실정치와의 적나라한 비교로 눈길을 끄는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판도라’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재혁(김남길 분)과 그의 동료들을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의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하는 대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을 던지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재난영화의 고질적 병폐인 ‘신파’를 피해가기는 다소 어렵지만, 영웅이 아닌 소시민의 마음이 묻어나는 이 신파는 그리 밉지는 않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거대한 눈요깃 거리에 현혹되지 않고, 끝까지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가지는 현실적인 공포와 그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부의 안이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는 박정우 감독의 뚝심도 상당하다. 그래서 호쾌한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재미있다”는 생각보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뒷맛이 더욱 일품으로 다가온다. 12월 7일 개봉.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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