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폭발을 소재로 150억 원이 투입된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판도라’는 현 시국을 연상케 한다. 4년 전 기획한 영화임에도 국민의 안전보다는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분이, 대통령이라는 헌법 최고의 권력자가 아닌 ‘실세’ 총리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규모 6.1의 강진으로 원전 한별1호기가 폭발하고, 대한민국은 혼란에 휩싸이지만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재난에 대처할 매뉴얼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였고, 그 와중에도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한다. 한별1호기의 위험성에 대한 ‘비선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고 총리 등 관료들에게 요구하지만 해결책이 강구되기는커녕 ‘비선 보고’ 라인들이 ‘잘리는’ 정치 보복이 자행된다. 또 재난을 관리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하던 대로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고 국민들은 또 그들의 말을 믿으며 ‘착하게’ 기다리다 더 큰 재난 상황에 직면하는 상황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다. 그러나 ‘나라’ 자체가 아닌 내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은 소시민들에게 이타심을 작동하게 한다. 영화에는 현실에 존재할 법한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입으로 자영업자가 망해도 ‘니가 몬 해서 그런 거지, 세상 탓하지 마라’라고 하는 답답한 소리를 해대는 ‘꼰대’ 엄마지만 ‘빈곤’은 개인의 무능 탓이라고 교육받은 세대들을 비난이 아닌 짠한 시선으로 그들을 감싸 안는다.
‘판도라’의 또 다른 백미는 다큐멘터리 같은 컴퓨터그래픽(CG)의 디테일과 재앙이 마치 우리 눈앞에 펼쳐진 듯한 실감나는 영상이다. 실제로 원전 폭발 직전 시뻘겋게 달아오른 원전 내부의 모습, 폭발이 발생했을 때 주변 지역이 초토화되는 모습, 재난 발생 후 벌어지는 대피 행렬 등이 실제 상황처럼 재현됐다. 제작진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재난 상황과 거대하고 복잡한 원전 시설을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전체 2,400컷 중 약 1,300컷을 최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작업했다.
연출은 지난 2012년 450만 명을 동원한 ‘연가시’의 박정우 감독이 맡았다. 원전직원 재혁 역은 김남길, 원전발전소장 평섭 역은 정진영이 연기했으며, 대통령과 ‘실세 총리’는 김명민과 이경영이 각각 맡았다. 이 외에도 재혁의 가족과 지인으로 김영애, 문정희, 김주현, 강신일, 김대명 등이 출연한다. 7일 개봉.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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