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앞으로 나와!”
지난 20일 영화배우 정우성은 영화 ‘아수라’의 팬 단체관람 현장에 예고 없이 방문해 이렇게 외쳤다. ‘아수라’에 나오는 장면인 “박성배 밖으로 나와!”를 즉흥 연기로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대한 화답이었다.
비록 연기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정우성의 이 발언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의혹의 최정점에 서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대중 스타의 한 사람으로서 100만명(주최측 집계)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민심을 대변한 외침이기도 하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스타들이 뿔 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 씨의 온갖 악행에 공모한 사살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심 표출의 최전선인 촛불집회에 참가하기도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 시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하는 등 참여 방식도 다양하다.
◇촛불집회 앞으로= 가수 전인권은 지난 19일 4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60만 시민의 애국가 제창을 이끌었다. 그는 또 “혹시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한 대 때리면 그냥 한 대 맞아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라며 “세계에서 가장 폼 나는 촛불시위가 되게 하자”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이승환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가수다. 그는 자신의 소속사 드림팩토리 사옥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이효리 등 100인의 뮤지션들과 함께 암울한 정권에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는 국민위로송 ‘길가에 버려지다’를 발표해 저작권 없이 일반 국민들이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했다.
크라잉넛과 조PD 등도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노래로 위로하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과 허지웅 등은 직접 촛불집회의 사회를 보는 방식으로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를 하고 있다.
조용히 촛불집회에 참여해 참여자들에게 힘을 보태는 이들도 늘고 있다. 2차 촛불집회에는 가수 김동완이, 3차 촛불집회에는 배우 이기우·이청아 커플, 배우 이엘, 래퍼 치타, 가수 지소울, 배우 오창석, 개그우먼 김미화 등이, 4차 촛불집회에는 배우 유아인, 가수 이준, 가수 채리나·박용근 부부, 배우 손수현 등이 참여했다.
◇장외에서 개념 발언= 현장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일하는 일터나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배우 강동원은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서 “빈 자리가 많은데 나쁘지 않다”며 우회적으로 촛불집회를 응원했다. 영화 시사회가 열리는 날은 3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배우 고소영, 김유정, 서신애, 김효진, 가수 솔비, 방송인 손미나 등과 같이 촛불집회를 응원하는 발언을 SNS에 올리는 스타들도 줄을 잇고 있다.
윤종신은 촛불집회 응원을 넘어 현 시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최근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평소 ‘첨예한 정치적 이슈에 성향을 드러내지 말자. 조용히 돕고 지원하고 힘을 실어 주자’가 내 모토였지만, 나 같은 사람의 소극적 표현 및 침묵이 파렴치한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결정적으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아지고 덜 유치해지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솔직해지기로 했다”고 썼다. 이어 “이건 첨예한 이슈도 아니고 참… 그냥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악 구분이 뚜렷한 구성이 더럽게 조악한 뻔한 영화 같다. 오래 보기 민망한 영화, 상영관 잘 못 들어가서 눈 귀 버린 영화, 재미없고 짜증나고…악인들이 심판받고 이 영화 빨리 끝냅시다”라고 현 시국을 꼬집었다.
◇시민의식의 진일보= 문화비평가들은 대중 스타들의 소신 있는 언행을 민주주의 시민의식의 진일보로 받아들인다.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으로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인 김작가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아닌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의견을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 일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의 시민의식이 진일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내밀하게 이뤄졌던 문화계 억압과 대형기획사 위주로 재편돼 있는 상황에서 자기 발언권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이 대중스타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과거보다 연예인들이 기획사에 종속돼있는 등 전반적으로 대중문화 산업이 자본의 영향력 하에 있고, 잘못 행동했다가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여전히 있는 것 같아 생각보다 참여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 스타들이 이제는 자기 검열 없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