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황교안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나라가 이 지경이 된 데는 국무위원 책임도 있는데 어떻게 한 사람도 책임지고 사임하는 이가 없느냐”며 “지금이라도 촛불민심을 대통령에게 바르게 전달해 조기 퇴진하도록 하고, (국무위원은) 국민과 대통령 중 누구 편에 설지 결단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국무회의 사회를 본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모두 진술에서 혼란한 정국에 공직자가 책임감을 갖고 민생을 챙기라고 발언한 데 따른 박 시장의 대응 발언이었다. 이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무위원들이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사퇴를 논의하는 게 정당하냐”고 말하자 박 시장은 “서울시장에게 (국무회의) 의결권은 없어도 발언권이 있는 이유는 국민 입장을 대변하라는 뜻이라고 맞받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안건으로 심의하는 과정에도 국무위원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전했다.
제정부 법제처장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고발 주체인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지면 정치적 편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자 박 시장은 “이 법안은 야3당 심지어 여당조차 합의 한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 형식을 갖고 논박하는 것 자체가 민심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김 법무장관을 향해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부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나. 검찰 수사가 틀린 게 있냐. 앞으로 어떻게 국민에게 법치를 말할 수 있느냐”고 따졌으며 김 장관은 답을 안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은 또 “중대 범죄인 이 사건의 피의자이자 민심에 의해 이미 탄핵당한 대통령은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했고, 특검뿐 아니라 현재 검찰 수사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를 직접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놓고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제정부 법제처장과 30여 분간 설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장관이 군사적 필요성을 설명하며 ‘일부’ 국민이 반대하지만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박 시장은 “일부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다수가 반대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윤 장관이 북핵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더하자 박 시장은 “지금은 외교든 국방이든 국민 합의와 신뢰가 있어야 정책에 힘이 담긴다”며 “국무회의에서라도 결의하지 말고 일주일이라도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라”고 요구했다.
박 시장이 “헌법 제60조에 의거, 중대한 주권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은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법제처장은 “30여개국과 이미 체결했으므로 비준 사항이 아니다”라고 맞서며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 여러차례 유 부총리가 “그만둡시다”라며 중단시키려 했으나 박 시장은 항의해 발언권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일본은 이 협정이 체결되면 후에 준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킨다”며 “자위대에 우리 국방정보를 넘겨주는 꼴은 물론 받는 건 적은데 줄 건 많은 이 안을 어떻게 국민이 용납하겠느냐”고 받아쳤다. 이어 “이건 정권문제를 넘어 민족문제”라며 “종교·시민단체·대다수 언론에서 친일 매국 행위라 비판하고 있는 이 안이 통과되면 국무위원 한 개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은 의결됐다. 체결을 위한 정부심의 절차는 사실상 끝난 것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협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오는 23일 한일 양국의 서명으로 체결된다.
박 시장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관해 수차례 반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결국 의결됐다”며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이어 “ 여러 차례 국무회의에 참여했지만 어떤 논쟁 사안을 놓고 국무위원은 진정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대통령 의지 따라 거수기처럼 의견을 표현했다”며 “이 같은 태도가 오늘날 이 난국을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가 없어 앉아 있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날 항의 표시로 회의 도중 퇴장했다.
그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 모두 물러나라는 문제제기가 나온 적은 없을 것”이라며 “(분노와 무력감에도)국무위원들과 얼굴 붉히며 이야기한 것이 나로선 최선이었으며, 이런 발언이라도 하는 것이 국민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사 이게 허공의 메아리가 될 지라도 앞으로 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참석해 국민의 이 같은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물이 천천히 데워지다가 끓듯이 이런 노력이 계속되면 물이 끓고, 그래도 해소가 안 되면 주전자 뚜껑이 날아가는 이치가 이 사회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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