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중간수사 결과이기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범죄에 연루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을 상대로 774억원대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요했다거나 청와대 대외비 문서 유출을 직접 지시한 혐의 등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청와대는 “대면수사를 거치지 않은 검찰의 일방적인 발표”이자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반박했지만 한참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로 들린다. 박 대통령 스스로 검찰 조사를 거부한 마당에 공정성 운운하는 변호인의 해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기업들이 이런 직권남용 과정에 줄줄이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청와대가 총수를 불러 자금 출연은 물론 인사를 청탁하고 홍보 책자까지 나눠줬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협조하라는 마당에 기업들로서는 대놓고 거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기업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적시하기는 했지만 재계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국민들은 정치공방 속에 국정혼란이 길어지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시민들이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뒷전에서 핑계만 댈 게 아니라 검찰이든 특검이든 떳떳하게 조사에 응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정치권도 마냥 거리집회에만 기대지 말고 헌법에서 정한 대로 탄핵절차를 서두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박 대통령은 물론 여야 정치권의 국정수습 능력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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