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벤처기업은 설립 이후 3년 동안 우수 벤처기업, 창조경제 우수사례로 선정된 것은 물론 대기업과 투자사 등에서 수십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말을 시가의 절반 이하에 넘겼다는 증언도 나와 말 거래를 계기로 최씨 측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미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7일 승마계와 벤처업계 등에 따르면 정씨가 지난 2012∼2013년 마장마술대회에서 탔던 말 ‘웰트마이어카운트다운’의 전 소유주 K씨는 현재 전자칠판 업체 I사를 운영하고 있다. K씨는 평소 정씨를 ‘유연’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2년 초 웰트마이어를 정씨에게 팔고 이듬해인 2013년 9월 I사를 설립했다.
I사의 창업과정을 이끌어준 곳은 중소기업청. 중기청은 2013년 9월 K씨를 ‘선도벤처 연계 창업지원 대상자’로 선정했다. I사는 창업 3개월 만에 벤처기업협회에서 우수 벤처기업으로 꼽혀 협회장상을 받았다. 이어 정부 자금인 모태펀드 운용사 3곳과 산업통상자원부·중기청으로부터 2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벤처 관련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품을 시연하는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시연 자리에서 “이런 기업은 성공시켜야 한다”며 지원을 당부했다.
대기업도 전례 없는 지원에 나섰다.
I사 제품은 현재 SK텔레콤 브랜드로 팔리고 있으며 I사가 입주한 곳은 한화가 마련한 벤처기업 육성 사무실이다. K씨는 “최씨가 (승마선수인) 정씨의 엄마라서 알기는 알지만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지는 않다”며 관계를 부인했다. 이어 “투자유치와 정부 사업 지원은 기업가라면 누구나 신경 쓰는 부분”이라며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업과 동시에 승승장구한 I사는 2013년 서울산업진흥원(SBA) 주최 ‘티스타즈(T-Stars) 투자오디션’에서 3위로 입상하면서 벤처캐피털(VC) 투자도 받게 된다. 보광창업투자와 서울투자파트너스에서 각각 5억원 등 모두 10억원이다. I사를 제치고 1위와 2위에 올랐던 업체에는 당시 별도의 후속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에스제이투자파트너스 역시 수억원을 I사에 투자했다. 공교롭게 이들 VC 3곳은 모두 중소기업청에서 관리하는 모태펀드의 조합 운용사이다. 2015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진흥개발원의 지원사업에서 5억2,000여만원을 받는다. 애초 I사는 10위로 평가받아 8개사가 선정된 사업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산업진흥개발원은 사업이 이미 시작된 후인 10월 뒤늦게 I사를 추가 지원 대상으로 뽑았다. 산업진흥개발원 측은 “기존 선정업체가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서울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한 해당 VC 들은 “당시 투자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I사는 선도벤처창업지원 사업 2차 지원(4,500만원), 투자연계 멘토링 지원(2억원), 구매조건부 개발사업(2억원) 등 중기청을 중심으로 한 각종 지원 사업을 휩쓸었다. KOTRA는 해외수출 주선과 해외시장조사 대행 등 10여 건을 지원했다. 벤처 관계자는 “정책자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은 둘째치고 신생 업체가 이렇게 많은 사업을 모두 찾아내 지원받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I사는 또 2014년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제품을 시연했다. I사를 포함한 벤처기업들 제품을 본 박 대통령은 “이런 업체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며 지원을 당부했다. 이후에도 I사와 K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해외 수출 등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청와대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지만 이유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대기업들도 나섰다. SK텔레콤은 2014년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브라보! 리스타트’에 I사를 선정하면서 직간접적 지원을 이어갔다. CES·MWC 등 국제전시 행사에 부스를 마련해줬으며 I사 제품에 자사 로고를 입혀 대신 판매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3억여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I사는 당사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성을 평가받은 후 선발됐고 이를 지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I사 제품의 시장성이나 기술력이 탁월한 것일까. I사의 전 직원은 “시장에 같은 형태의 여러 제품이 있다고만 이야기하겠다”고 언급을 꺼렸다. K씨와 함께 2012년까지 사업을 진행했던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제품 판매에 나섰지만 적자를 봤다”며 “기술력과 시장성 모두 부족했다”고 평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I사의 성장 배경을 최순실씨와의 관계에서 찾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교롭게 승마선수로서 정유라씨의 급성장은 웰트마이어를 타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주요 입상 실적이 별로 없던 정씨는 이 말을 타고 2012년부터 전국체전에서 다관왕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내기 시작한다.
웰트마이어를 탔던 한 승마선수는 “명마로 유명했던 말이었고 이 정도의 말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K씨가 이 말을 매물로 내놓자 정씨 측이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거래는 시세보다 훨씬 낮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한때 웰트마이어의 주인이자 정씨를 지도했던 신모 전 국가대표 승마팀 코치를 비롯해 승마계에서는 이 말의 적정가치를 3억원 안팎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K씨는 “매매 에이전트에서 내가 받은 돈은 1억원 미만”이라며 “3억원은 거품”이라고 말했다.
거래 과정도 불명확하다. K씨는 “정씨 측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에이전트를 이용했다”고 하지만 신 전 코치는 “국내에는 말 거래 에이전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K씨는 최씨와의 관계를 묻자 “모른다”고 하다가 거듭된 질문에 “정씨의 엄마이기 때문에 알긴 알았다.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윤회씨는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다. K씨는 I사에 각종 지원이 몰린 배경에 대해서도 “창업지원은 일반적인 프로그램일 뿐이고 우리가 많이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김흥록·진동영기자 rok@sedaily.com
‘[최순실 게이트]신생벤처기업 I사 특혜지원’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 11월 17일자 사회면에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명마를 판 40대 벤처기업 I사의 대표이사가 회사에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특혜지원을 받았다고 2차례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보도 중 I사가 선도벤처창업지원 사업 2차 지원으로 받은 금액은 4억5,000만원이 아니라 4,500만원이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한 이에 관해 해당 I사 측은 “해당 말은 나이를 먹어 감가상각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명마를 시가 이하로 판 것이 아니다. 최순실 씨와는 개인적 친분이 없으며, 창업지원 사업은 모두 정당한 공모 제출과 경쟁 과정을 거쳐 공개적이고 객관적으로 선정된 것이며, 다른 여러 업체들과 함께 선정된 것으로 당사에만 지원이 집중된 바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