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이번에는 ‘트럼플레이션’이 촉발한 나비효과가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을 뒤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채권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환경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과 강달러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례적 현상을 두고 선진국 중앙은행은 전자에, 신흥국은 후자에 대응하느라 긴장하는 모습이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만 해도 유동성 확대라는 하나의 목표만 보고 질주하던 중앙은행이 트럼프 시대를 맞아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시험대에 선 것이다.
선진국 중앙은행 중 처음 행동에 나선 곳은 일본은행(BOJ)이다. BOJ는 17일 2년물 국채를 -0.09%, 5년 만기 국채를 0.04%에서 무제한 매입하는 지정가 매입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9월 무제한 돈을 푸는 ‘양’ 위주의 정책에서 금리라는 가격변수를 직접 관리하는 ‘질’적 정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일본 국채까지 급격히 오르자 BOJ가 가파른 금리 인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천명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금리 상승에 화들짝 놀랐지만 예상하지 못한 엔화 약세는 BOJ에 희소식이다. 이 때문에 BOJ는 당분간 엔화 약세를 유지하면서 채권금리를 관리하는 쪽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매집 대상 채권이 바닥나면서 양적완화 중단 위기에 몰린 유럽중앙은행(ECB)은 트럼프 효과를 내심 반기고 있다. 급격한 채권금리 상승 덕에 매입 가능 채권이 늘어난 것이다. ECB는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예치금리(-0.4%)를 웃도는 채권만 매입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채권금리가 뛰면서 양적완화 중단 시기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ECB는 다음달 8일 정례통화회의에서 양적완화 유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내년 1월20일) 이전에 미국의 정책방향과 그 효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ECB가 양적완화를 추가로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인민은행도 트럼프발 불확실성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쌓인 부채와 성장둔화에 트럼프 리스크까지 더해진 3중고에 시달리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부동산 버블의 연착륙을 위해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위안화 절하가 트럼프 정부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위안화 절하는 위안화의 국제화 목표와 상충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장벽이 현실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위안화 수요가 늘어 국제화를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된다.
한편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강달러가 야기한 외국자본 유출을 막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달 11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장중 2.7% 급락해 2011년 9월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했고 인도 루피화 가치도 0.5% 내렸다. 당시 블룸버그통신은 “인도네시아와 인도 당국이 시장 개입에 나섰다”고 외환시장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