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했던 1950년대 경제
“난 장난으로 총 맞은게 아니야.” 영화 ‘오발탄’에서 상이군인 영호(최무룡)는 6·25전쟁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버럭 화를 낸다.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경식(윤일봉)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100분의 1도 채우지 못하는 현실에 굴복할 수 없다”고 분노한다.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참담함을 그린 유현목 감독 작품 ‘오발탄’(이범선 원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분노와 암울함에 휩싸여 있다.
#충치조차 못뽑는 철호
주인공 송철호(김진규)는 암울하다. 충치로 통증이 엄청난데도 뽑을 엄두조차 못낼 정도다. 정신질환으로 밤낮없이 “가자~!”고 소리치는 노모, 영양실조 걸린 만삭의 아내, 사고뭉치 동생 영호, 여동생 명숙과 막내동생 민호, 새 고무신 사달라고 보채는 딸까지 식솔들부터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철호는 양심만은 지키며 살려 한다. “형님, 왜 우리만 좁은 양심의 울타리에 숨이 막혀야 합니까?”라는 동생의 물음에 철호는 “영호야, 그렇게 살라면 이 형도 잘살수 있었어”라고 타이른다.
#은행털이 나선 영호
영호는 막막한 현실에 분노하며 은행털이를 감행한다. 그러다가 벌어진 경찰과의 추격전에서 1950년대의 우울한 시대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어두운 지하에서 목매 자살한 여인과 등에 업혀 울어대는 아기를 보고 영호가 흠칫 놀라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는다. 이 장면은 명동 한복판에서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을 부르는 전도행렬 장면과 싸늘하게 대비된다. 또한 철도건설 현장에서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위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비쳐진다. 유현목의 ‘오발탄’이 왜 여전히 한국영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지 끄덕여지게 하는 장면들이다.
#경제 파탄시킨 이승만 부패
1950년대 경제 파탄은 이승만의 부패정치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직후 유일한 돈줄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원조물자를 특정 재벌들에게 몰아주고 그 대가를 뇌물로 받았다. 1954년 1년간 원조물자로 기업들이 거둔 이윤율이 180%나 됐다고 하니 이승만 정권은 얼마나 많은 잇속을 챙겼을까.
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은 중소기업들의 자립기반 상실과 실업자 양산으로 귀결됐다. 여기에다 미국 농산물 유입으로 농민들이 대거 고향을 등지면서 도시는 실업자들 천지가 돼버렸다. 나쁜 정치가 기업 생태계와 일자리를 파괴하고, 당시 인구 80%를 차지하던 농촌의 생존질서를 철저하게 파괴한 것이다.
#경제 망친 박근혜 부패정치
2016년 박근혜 정권도 부패했고, 그 부패가 경제를 해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느라 경제정책 라인을 악용하고 경제 시스템을 망가트렸다. 최씨가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에 청와대 참모들을 동원한 것도 모자라 대기업 총수들을 대통령이 직접 만나 손을 벌렸다. 심지어 모금 과정에서 기업들의 약점을 파고드는가 하면 기업의 숙원과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모금의 대가로 제시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찌 민주화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1950년대 이승만 독재정권 보다도 못한 저급한 악행이 자행될 수 있단 말인가.
#용서 못할 최순실의 전횡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온 대다수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학칙까지 바꿔가며 이화여대에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한 것, 정유라의 승마 활동에 삼성전자의 돈 35억원을 지원받는 등 각종 특혜를 누린 것, 이런 비상식적 전횡에 의문을 제기한 교수와 문체부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가한 것 등은 정의와 상식이 살아있는 세상이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용서받기 어려운 죄악이다.
#상식과 정의가 짓밟힌 현실
영화 ‘오발탄’에서 주인공 송철호는 가난해도 양심만은 지키며 살려 했다. 그러나 정의와 상식이 무너져버린 현실은 철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아이를 낳다 죽고, 동생은 은행을 털다 잡혀간 참담한 현실. 그 충격에 철호는 충치를 뽑아버리고 정신없이 쏘다니다 택시를 잡고는 무턱대고 “가자, 가자!” 소리친다. 그러나 식구들이 기다리는 해방촌으로 갈지, 아내가 죽어있는 병원으로 갈지, 동생이 구금된 경찰서로 갈지 갈피를 못 잡는다. 이에 택시 기사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아저씨가 걸려서…”라고 투덜댄다. 피 흘리며 쓰러진 철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직임이 없다. /문성진기자 hns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