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관련 의혹이 모두 정리된 뒤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며 검찰이 제시한 일정인 16일 조사를 거부한 데 따라 최순실씨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결과가 포함되기는 어렵게 됐다.
이날 유 변호사가 서울고검 앞에서 한 기자회견의 요지는 △되도록 서면조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관련 의혹이 모두 정리된 뒤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 △(의혹 사건들은)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며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유 변호사의 이날 발언은 하야, 임기 단축, 2선 후퇴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청와대의 뜻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스스로 혼란을 수습하고 임기를 마치겠다는 의지를 아직 가지고 있다. 검찰 수사 역시 온전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받겠다는 입장이다. 정확히는 법무부와 검찰의 지휘권자로서 예우를 받아가며 조사를 받겠다는 것이지 일반적인 참고인이나 피의자로서 조사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최대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조사 일정에 대해서는 최대한 시간을 끌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주요 피의자의 기소가 끝난 뒤에 조사에 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지시로’ 또는 ‘박 대통령과 공모해’ 등의 문구가 들어가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수석 등은 이미 “박 대통령이 시켜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해 검찰로서는 박 대통령에게 이들 진술의 진위 여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조사받으라”는 검찰과 “준비가 안 됐다”는 박 대통령 측의 기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박 대통령이 끝끝내 시간을 끈다면 이는 주요 피의자에 대한 부실 수사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향후 있을지 모를 야권의 탄핵에 대비해서라도 검찰 수사를 최대한 회피해야 하는 입장이다. 검찰이 범죄 사실을 확정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은 헌법상의 불소추 특권에 따라 기소는 당하지 않지만 이는 탄핵의 사유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야권은 박 대통령이 유 변호사를 선임한 것 자체가 100만 촛불로 나타난 민심과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보고 있다. 유 변호사는 스스로 ‘진박(眞朴)’을 자처하는 인물로 지난 4·13총선 때 새누리당 서울 송파을에 단수 공천됐다가 김무성 당시 대표가 직인 날인을 거부해 출마가 좌절되기도 했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근혜 당시 후보 편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파헤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당시 총선에 출마한 유 변호사에 대해 “저와 오랫동안 생각과 뜻을 같이해온 동반자로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신뢰하는 분”이라며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법조계의 신망을 받는 중량급 변호사가 아닌 ‘자기 편 정치인’을 선임한 것부터가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4기 출신으로 인천지검과 서울북부지검을 거쳐 2004년 변호사로 변신했다. 검사 시절에는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향응을 받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소설가 공지영씨 등에게 트위터로 막말을 하기도 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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