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백악관 수석인 도널드 럼즈펠드는 미국 워싱턴DC의 한 식당에서 시카고대 교수인 아서 래퍼와 마주한다. 래퍼의 예일대 클래스메이트이며 럼즈펠드 밑에 있던 딕 체니와 함께하는 저녁 자리였다. 30대 초반의 의욕 넘치던 경제학자 래퍼는 세율과 정부 수입에 관한 주장을 펼치다가 냅킨에 종(鐘) 모양 곡선을 그려 설명한다. 이 간단한 곡선이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감세(減稅) 정책의 이론적 기초가 된 ‘래퍼 곡선’이다.
이 곡선은 세율이 적정선 이상으로 올라가면 오히려 조세 수입이 줄어드는 기(奇)현상을 설명하면서 세율을 내려야 경제가 살고 나라 살림도 튼튼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1차 오일쇼크에 따른 경기 침체와 인플레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위한 제안이었다. 1978년 이를 래퍼 곡선으로 명명한 것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주드 와니스키였다. 후일 레이건 행정부의 참모들이 이 공식을 그대로 정책으로 옮기게 된다.
이 곡선은 감세와 규제 철폐 등을 골자로 한 공급중시(supply side) 경제학으로 완성된다.
공급중시 경제학은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던 케인스의 수요 진작(demand pull) 이론을 뒤엎은 것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나 정작 래퍼는 케인스에게 배웠다고 고백했다. 영화배우 시절 소득의 90%를 세금으로 내 세금을 ‘도둑’이라고 여기던 로널드 레이건은 이를 선거 운동의 주요 공약으로 채택하고 이후 정책으로 추진한다. 후일 백악관 경제 보좌관이던 밀턴 프리드먼이 재정적자 문제를 제기했지만 레이건은 임기 동안 공급중시 경제 정책으로 일관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레이거노믹스와 유사한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감세와 확대 재정, 규제 완화 등이 공급중시 경제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지난 레이건 시대의 ‘위대한 미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레이건 이후 미국 사회가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로 두고두고 고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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