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이라는 인물은 암울한 캐릭터였는데 제가 희화화했어요. 가볍게 가는 게 맞는지 촬영 과정 중에 논란이 있었지만 대본 자체가 이미 희화화됐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영화 정말 재밌어요.”
9일 개봉하는 영화 ‘스플릿’에서 과거에는 볼링계의 전설로 불리다가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낮에는 가짜 석유를 판매하고 밤에는 도박볼링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 철종을 연기한 배우 유지태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이어 “허술하고 허당끼 있고 실없는 농담도 하고 이런 캐릭터가 훨씬 더 유리하지 않나요”라고 되물으며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여서 1,000만 배우도 기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연히 만난 자폐 성향을 지닌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을 돈을 벌기 위해 볼링 도박판에 끌어들이는 철종 등 영화에는 도박 그리고 인간말종 캐릭터들이 등장해 우리 사회와 인간의 어둡고 축축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휴머니티를 향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특히 유지태는 ‘스플릿’을 영화 ‘레인맨’에 비유했다. “철종은 처음에는 영훈을 이용하려고 하기만 했고 영훈이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걸 보고 말릴 수도 있었지만 그냥 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요. 그런데 시간이 필요했던 거에요. 즉각적으로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는 게 아니라 서서히 영훈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요. 영훈이 철종에게는 보기 싫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기도 했을 거에요.”
지난 1999년 출연한 ‘주유소 습격 사건’ 이후 밑바닥 인생 혹은 소위 말하는 망가지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 유지태는 최근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출연하며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예능감을 드러내며 대중들에게 친숙해졌다. 이에 대해 그는 신기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정말 재미있었냐”고 묻더니 “망가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홍상수 감독님 작품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속물근성 가득한 교수 역할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다”며 “이번 영화도 망가지면서 재미있게 유익하게 찍었고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볼링과 도박이라는 소재다 보니 영화의 흐름은 상당히 박진감 넘치고 스피디하다. 또한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지만 전설의 프로 볼러였던 철종이기 때문에 볼링 실력이 뛰어나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볼링이 그에게 숨겨진 재능이었다. 그는 “이 작품하기 전에 볼링은 딱 한 번 쳐봤는데 연습 때 세
븐 스트라이크까지 나왔는데 그때는 정말 심장이 쿵쿵 뛰더라”며 “3개월만 지났으면 저는 프로 볼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에요”라며 볼링 실력에 대해 뿌듯해 했다. 그가 뿌듯해 할 만큼 영화 속에서 그는 폼까지 완벽한 볼러였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을 사는 철종이라지만 관객들이 배우 유지태에 기대하는 비주얼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이에 대해 “배우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멋스러움이 있어야 한다”며 “의상팀이 분위기에 맞게 남루하게 잘 선택해줬고, 영화 보고 섹시하다고 말해줘서 기뻤다”고 말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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