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찾았다가 거리 곳곳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자전거 행렬을 보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직장인부터 주부들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도로를 누비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덴마크 사람들 가운데 가장 행복한 이유로 자전거를 꼽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의 발로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유엔 등에서 해마다 행복 보고서를 내놓으면 줄곧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완벽한 복지와 안정된 정치, 사회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표 이외에 또 다른 행복비결로 덴마크 특유의 ‘휘게(Hygge)’를 꼽는 이들이 많다. 휘게는 덴마크어로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을 뜻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안정과 평온·친밀감이다. 덴마크의 마이크 비킹 행복연구소 소장은 이를 덴마크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삶의 태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박한 생활 속에서 쿠키 하나라도 직접 만들어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편안한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다. 식구들이 모이는 가정은 ‘휘게 본부’이며 크리스마스는 ‘가장 휘게스러운 날’로 인식되고 있다. 덴마크 사람들이 유럽에서도 가장 넓은 거실 공간을 사용하면서 베이컨을 많이 먹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영국의 사전 출판사인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와 함께 휘게를 꼽았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하는 세계인들의 간절한 마음이 녹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그러잖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국민들이 ‘최순실 사태’ 여파로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지쳐가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서로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휘게 라이프를 맛볼 수 있을까. 오늘은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