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왕조인 주(周)나라의 여(려)왕은 폭정 군주였다. 전에는 누구나 이용하던 토지와 산림·연못 등의 관리권을 빼앗아 독점한 후 백성들의 이용을 금지하는가 하면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억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결국 들고일어났다. 왕은 이웃 나라로 도주했지만 태자는 한 신하의 집에 숨었다. 성난 백성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졌고 얼마 안 돼 그의 거처가 발각됐다. 비록 신하의 아들이 태자 대신 맞아 죽으면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민심을 잃은 주나라는 이후 쇠망의 길을 걸었다.
민초는 모래알 같다고들 한다. 하지만 한번 나서면 누구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들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려 하던 루이 16세 일행을 찾아내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도주하던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를 체포한 이는 군인도 경찰도 아닌 평범한 역장의 아들과 파르티잔들이었다.
현대에 들어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은 대중에게 강력한 정보력까지 부여했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등장이 그것이다. 지나친 사생활 침해의 부작용 지적에도 이들의 성과는 놀랍다. 국내 최연소 박사를 꿈꾸던 천재 소년의 논문 표절 사실을 밝혀낸 것도, 만삭 아내의 부탁으로 빵을 사가던 2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크림빵 뺑소니’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묻혀 있던 문화계의 성 추문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도 모두 이들 덕이었다.
네티즌 수사대가 다시 맹활약하고 있다.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다. 여기에는 검찰이나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호텔의 콘센트 형태와 위치를 분석해 최씨와 모 언론의 인터뷰 장소가 독일이 아닌 덴마크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최씨의 딸 정유라의 SNS 계정도 공개했다. 검찰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최씨의 입국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최씨 소유로 추정되는 독일의 또 다른 유령회사를 찾아낸 것도 이들이다. 최씨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던 검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차라리 검찰 대신 네티즌 수사대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은 어떨는지./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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