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은 두 사기꾼은 베틀을 놓고 옷감을 짜기 시작했어요. 베틀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어요. 밤늦도록 빈 베틀에 앉아 열심히 베 짜는 시늉만 했지요. 새 옷이 궁금해진 임금님은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서 알아봤어요. 하지만 심부름을 온 늙은 신하는 눈앞이 아찔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요. ‘드디어 옷이 완성됐습니다.’ 두 사기꾼이 옷을 가져왔어요. 임금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멋진 옷이야’라고 말했어요. 두 사기꾼은 옷을 입혀 주는 척하고 임금님도 몸을 돌려 거울을 보는 척했어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 신하들은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신하들도 바보라는 말을 들을까 봐 거짓말을 했어요. ‘이런 색과 무늬는 처음입니다! 참 잘 어울리십니다.’ 드디어 임금님의 행진이 시작됐어요. 길가에 나온 사람들도 모두 임금님의 옷을 칭찬했어요. 그때 한 어린이가 외쳤어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어린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어요. 임금님은 창피했지만 행진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있지도 않은 옷자락을 받쳐 든 시종들과 신하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행진을 계속했어요.”
누구나 어릴 적 한두 번쯤 읽어봤을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줄거리다. 이 책을 최근 다시 뒤적여봤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접하면서 이 동화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찬찬히 음미해보니 지금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180년 전인 1837년에 발표된 동화 속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다니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화 내용을 앞부분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이다.
동화 속 어린아이의 외침과 같은 수많은 폭로와 문제 제기가 현실에서 없었던 게 아니다. 끊임없이 계속됐다. 최순실씨 경우만 하더라도 수십 년 전부터 아버지 최태민과 관련된 경고들이 쏟아지고, 최순실과 딸 정유라의 반칙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반짝 주목받다가 묻히고 시간이 지나면 독버섯은 교묘하게 되살아난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며 본대로 말한 사람은 왕따가 되고 불행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도 잠깐 놀라는 시늉만 있을 뿐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변화 없이 흘러가는 탓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바보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신하들처럼 자리를 보전해 호가호위(狐假虎威)하기 위해서, 군중들처럼 눈감고 귀 닫는 게 편해서 등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 사이 독버섯은 더 왕성하게 자란다.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고름을 방치해 갈수록 곪는 격이다. 경고등이 켜질 때마다 해결책이 제시됐으면 대한민국이 요즘처럼 어지러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이 지경이 된 게 아니다.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의 결말과는 달리 행진을 멈추고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용기와 의지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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