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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게이트]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층 등산 동행기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의혹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이 분노하고 있다. 이에 여론이 들끓자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당 내에서는 친박 지도부는 당장 물러가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내홍을 겪고있다. 야당은 여당의 거국 중립 내각 구성 주장은 국면전환용이라며 일축하고 진상규명이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까도까도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과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11.7%(31일 기준) 로 사상 최저 기록으로 치닫았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일명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대구·경북 지역층과 50~60대층의 지지도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것. 이들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역사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사건 등 각종 풍파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박 대통령을 지지해왔고, 각종 선거에서 여당에 표를 던져왔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씨 사태와 관련해 여러 의혹들이 우후죽순처럼 터지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마음마저 산산히 부서졌다. 대한민국 온 국민이 박 대통령의 하야, 탄핵을 외치는 가운데, 여당의 지지가 높은 실제 50~60대의 생각은 어떨까?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는 여전히 견고할까?

▲‘산으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경제신문 기자들이 직접 ‘산’에 오르다.
최순실 씨가 극비리에 입국한 지난 30일 오전, 북한산은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그렇지만 등산로 입구에 모여 등산 준비를 하는 이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는 이들, 정상에서 준비해온 식사를 하는 이들까지,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대부분 최순실 씨 사태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입장이었다. 50~60대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판넬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5명에 불과했지만,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6배가 넘는 96명이었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는 무너지고 있었다.

등산로 중간 휴식지에서 만난 오근창(45) 씨는 “정말 창피하다. 이게 나라냐”며 “다시 과거의 유신 정권 시대로 거꾸로 돌아갔다”고 탄식했다. 오 씨는 “대한민국의 경제, 외교, 국방 다 지금 엉망”이라며 “아빠로서, 대한민국의 남성으로서 부끄러워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 “직장에서도 경북, 경남권 출신의 (박 대통령) 지지자들도 하나같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은 게 너무 부끄럽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산악회 회원들과 점심 식사를 즐기던 양근호(56) 씨도 “정말 말 그대로 ‘봉건시대에도 없던 이야기’”라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씨는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 투표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까 국민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정말 국민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또 “주위의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자’들도 지금은 다 욕한다”며 “차기 대선 때는 보수당 지지 안 한다. 보수 쪽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또 똑같이 되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철(62) 씨도 “예전엔 나도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나라가 몇 사람에 의해 운영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씨는 그러면서 “지금은 박근혜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0점, 아니, 마이너스”라고 비판했다. 역시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김영호(64) 씨도 “지금까지 국정을 이끈 게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박근혜는 여태 없었던 것”이라며 “허상의 인물에게 지지를 보냈다는 것에 허탈감과 허무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이 박 대통령의 고교 후배라고 밝힌 안영희(여, 54) 씨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대체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느냐”며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에 가보니 젊은 사람들이 깨어있다는 것을 보고 행복했다”며 “그런 모습에 대한민국의 희망을 얻고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힌 이지영(여, 59) 씨는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잘 알지도 못하는 최순실에게 검증을 받는다는 것 자체는 정말 잘못됐다.”며 “나도 박근혜 지지자들 중 한 명이었는데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총체적으로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분노해 한 마디씩 거들고 지나가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한편, 최순실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태와 관련해 격양된 여론과 주위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영상 인터뷰는 물론 대화조차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질문을 해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의견은 대부분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자랐으니 정서가 불안해 최 씨 일가에 의지하게 된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가량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는 현실적으로 힘들고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며 이런 국정 혼란 시기에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기반을 다져줘야 나라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렇지만 최순실 사태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며 최 씨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서울경제신문이 북한산에서 확인한 생생한 민심, 특히 각종 논란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보수 진영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다. 의혹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완전히 불신을 받을 것이다. 이런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닐까. /정가람 기자·김영준 인턴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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