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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전쟁…그런데 원화 환율은?





‘금리 대폭 인상. 외자 긴급 차입, 국제통화기금(IMF) 긴급 대출….’ 경제 난국을 만난 개발도상국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금융의 심장인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기는 1978년. 대한민국과 미국의 사이가 극도로 나빴던 시절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박동선 게이트로 어수선하던 때 미국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달러화 가치의 폭락. 불과 3년 만에 서독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가 40% 넘게 떨어졌다.

미국은 여기에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펼쳤다. 1978년11월1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6개 항의 ‘달러화 가치 방어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300억 달러에 이르는 현금 확보. 여차하면 외환시장에 무제한 개입해 달러를 사들이기 위해서다. 미국은 막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거두는 서독과 일본·스위스에 150억 달러, IMF로부터 30억 달러(특별인출권 매각을 포함하면 50억 달러)를 빌렸다.

사정이 급한 터. 1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채권도 찍었다. 정부 보유 금(金) 매각 물량도 크게 늘렸다. 월 30만 온스인 금 공개 매각 물량을 5배인 150만 온스까지 올렸다(실제로는 그 8배인 240만 온스를 팔아 치웠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회원 상업은행에게 꿔주는 이자, 즉 기준금리도 8.5%에서 9.5%로 1% 포인트 올렸다. 연초 미국의 기준금리는 6%. 불과 1년 사이에 기준금리가 이토록 오른 것은 대공황 이래 처음이다. 1차 석유파동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1974년의 금리 8.0%보다 높았다.

다른 나라였다면 파산 선언으로 간주됐을 조치를 미국이 택한 표면적 이유는 두 가지. 달러화 가치가 3년 동안 해마다 10~16%씩 떨어지고 물가상승률도 두자릿수를 향해 치솟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달러화의 위상이 더 떨어지면 중간선거는 물론 대통령 선거 재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경고를 카터 대통령은 무겁게 받아들였다.

기대대로 달러화 가치는 단박에 약세에서 강세로 돌아섰다. 1975년 달러당 305엔이었던 일본 엔화의 대미 환율은 1977년 말 240엔, 1978년 10월 말 176엔까지 내려갔다가 카터의 긴급 달러화 가치 방어책이 발표된 이후 반등세로 돌아섰다. 1980년대 초반에는 250엔대까지 올랐다. 문제는 두 가지. 민간 부문의 이자 부담 급등과 무역수지 적자 구조를 낳았다.

먼저 금리 부담 증가에 따라 미국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졌다. 기업도 금리 부담으로 이자가 싼 해외로 옮겨 나갔다. 무역 수지는 더욱 나빠졌다.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던 무역 수지가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적자로 돌아섰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산과 서독산 상품이 미국 시장을 휩쓸었다. 요즘의 중국산 공산품처럼.



카터 대통령의 의지대로 달러화는 강세를 유지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주요국의 작은 협조로 막을 수 있었던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걷잡을 수 없었다.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는 경제적 악재 하나가 더해졌다. 군비 지출 증대에 따라 예산 지출이 급증해 경상수지까지 나빠졌다. 레이건 대통령의 첫째 임기가 만료된 1985년 무역·재정수지 적자는 3,305억 달러. 카터 시절보다 4배 이상 늘어났다.

달러화 가치 하락과 무역 수지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은 1985년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재무장관을 뉴욕 플라자 호텔에 불러들여 합의를 이끌어냈다. 말이 합의일 뿐 실은 일본과 서독의 팔을 비틀었던 ‘플라자 합의’가 나온 뒤의 결과도 카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이라는 반짝 효과를 누렸으나 일본과 독일의 흑자가 오히려 급증한 것.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보완한 루브르 합의(1987년)를 통해 가까스로 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데다 내수부양책까지 실패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들었다.

한국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 3공 말기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둔화하고 수출도 어려움에 빠졌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안보·외교와 경제 등 내치를 분리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고민한 게 이 무렵이다. 카터 미국 대통령의 달러화 긴급 방위 대책 발표 38주년. 역사의 반복 가능성에 몸이 떨린다. 한 세대 이상의 시차를 두고 부녀(父女) 대통령이 정치·경제 난국과 맞닥뜨렸다.

우리 시대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한국 원화의 환율만큼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카터 대통령이 미국 달러화 가치 방어에 나설 무렵, 원화의 대미 환율은 450원선. 외환위기(IMF 사태) 전에도 780원대를 기록했던 환율은 요사이 1,145원대를 오르내린다. 원화 가치는 38년 전보다 2.54배 가량 떨어졌다. 원론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통화의 가치 역시 올라가기 마련이건만 원화 가치는 왜 그럴까. 따져볼 일이다. 원화의 가치 하락의 고통과 과실은 누구의 몫이었는지.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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