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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본드 황제의 추락과 부활

마이클 밀켄이 2015년 싱가포르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 푸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정크본드의 황제였으나 내부자 거래로 감옥 신세를 졌던 밀켄은 출소 후 세계 최대 교육재단을 비롯해 암 치료재단 등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자선사업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밀켄 홈페이지




한계 기업의 구원자와 월가의 악당. 정크 본드 투자로 1980년대 월가를 주름잡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에 대한 평가다. 삶 자체도 극단적이다. 전성기인 1987년 성과급 연봉이 5억5,000만 달러. 역대 샐러리맨 가운데 최고액을 받았다. 산이 높았던만큼 골도 깊었다. 뉴욕 검찰에 내부자거래 및 사기 혐의 등 98개 죄목으로 기소돼 1990년 벌금 6억 달러를 물었으니. 우리 나이로 70세. 지독한 돈 벌레였던 그는 요즘 기부 천사로 불린다.

극과 극을 오간 그의 행적은 ‘약탈자들의 무도회(The Predators‘ Ball)’라는 제목의 소설로도 남았다. 기부나 사회 공헌을 빼고 정크 본드 시장과 기업 인수 및 합병(M&A)의 어두운 구석을 주로 밝힌 이 소설은 뮤지컬 작품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1996년10월11일 뉴욕 브루클린음악당 초연. 밀켄 스토리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

밀켄은 과연 기업 합병을 통해 기업을 쓰러트리고 거액을 챙기는 ‘약탈자’였던가. 그랬다. 소설과 뮤지컬의 제목 ‘약탈자들의 무도회’도 마이클 밀켄이 동료 기업 사냥꾼과 고객들을 상대로 주최하던 파티의 이름에서 따왔으니까. 밀켄이 월가의 포식자가 된 기반은 정크 본드(Junk Bond) 매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투자적격등급 이하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정크 본드)를 신입사원 시절부터 눈여겨봤다.

캘리포니아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1946년 태어난 그가 UC 버클리와 펜실베이나 와튼 스쿨(경영대학원)을 마치고 1969년 드렉셀 투자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한 우물을 팠다. ‘채권’ 대학원 시절 은사인 브레독 히크만 교수(전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강의를 깊이 새겨들었기 때문이다. 히크만 교수의 강의 요지는 ‘부적격 투자 등급 채권이 위험도는 크지만 수익률을 따져보면 오히려 어느 채권보다 높다’는 것이다.*

채권조사부에서 그는 일 벌레로 통했다. 취침하는 3~4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거래와 분석에 매달렸다. 훗날 인터뷰에서 밀켄이 가장 보람 있었던 시절로 손꼽았던 시기는 24세부터 32세까지 8년. 일부러 편도 2시간 반이 걸리는 교외에 집을 마련한 그는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다. 새벽과 밤, 버스와 지하철에서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광부용 헤드라이트를 쓰고 자료를 읽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30대 중반 채권부장직을 맡은 그는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마침 주변 여건이 좋아졌다. 레이건 행정부의 자유방임주의 아래 규제 완화, 투기적 낙관론이 형성된 것. 정크 본드를 ‘추락한 천사(Fallen Angel)’라고 불렀던 밀켄에게는 제도권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기업인들이 몰렸다. 밀켄의 시장 지배력은 커져만 갔다. 정크 본드를 발행한 거래 기업이 다른 증권사와 거래를 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밀켄은 돈줄을 끊어버렸다.

크고 작은 기업들의 정크 본드를 인수하고 중개하면서 축적된 기업 내부 정보는 곧바로 기업 인수 및 합병(M&A)을 위한 정보로 쓰였다. 밀켄은 ‘정크 본드의 황제’, ‘M&A 시장이 숨은 지배자’로 통했다. 1985년~1988년 동안 회사에서 받은 급여가 10억 달러를 넘었다. 우태희(현 산업자원부 2차관)의 ‘세계경제를 뒤흔든 월스트리트 사람들’(2005년작)에 따르면 월가 사상 최고 연봉이다.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던 밀켄의 질주는 1987년10월 블랙 먼데이의 주가 대폭락과 함께 멈췄다.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프로그램 매매와 포트폴리오 매도로 일주일 사이에 주가가 22% 폭락한 데 이어 저축대부조합(S&L) 스캔들이 터지며 밀켄의 시대도 끝났다. 투자자들이 정크 본드나 대부조합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자 광범위하게 부당 거래 여부를 조사하던 감독 당국과 검찰의 조사망에 걸린 것이다.



감독 당국이 당초 용의선에 올렸던 인물은 밀켄이 아니라 기업 사냥꾼 이반 보스키(Ivan Boesky).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찰리 쉰이 주인공을 맡은 1987년 개봉작 ‘월 스트리트’가 보스키를 모델로 만든 작품이다. 밀켄과 내부 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차익을 맛보던 보스키가 체포된 날(18\986.11.14)을 월가는 지금도 ‘보스키 데이(Bosky Day)’로 기억한다. 언론은 정치판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 월게이트(Wall Gate)가 터졌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주말을 쉬고 개장한 주식시장에서는 전종목의 주가가 연 이틀간 곤두박질쳤다. 작전세력의 거물인 보스키가 잡힌 이상 더 다칠 인물들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도 쏟아졌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구속된 보스키는 철장 안에서도 ‘거래’를 텄다. 시장에서는 ‘공포의 이반(Ivan the Terrible·러시아의 폭군 이반 뇌제처럼 냉혹하다는 뜻에서 생긴 별명)’으로 불렸지만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검찰이 7년형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자 작전세력 계보를 줄줄이 불었다. 물증이 없어 체포하지 못했던 정크 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이 여기서 걸렸다. 보스키는 밀켄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검찰에서 일단 풀려난 보스키는 밀켄을 찾아갔다.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는 보스키에게 밀켄은 ‘검찰의 추적을 피해 관련 증거를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고 말했다. 몸에 녹음기를 감췄던 보스키와 밀턴이 나눴던 대화와 대책은 고스란히 검찰 손으로 들어갔다. 밀켄을 판 덕분에 보스키의 벌금은 1억 달러로 낮아졌다. 형량도 징역 2년으로 줄어든 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검찰은 체포한 밀켄이 ‘몸통’이라고 물아 부쳤다. 밀켄을 기소한 맨해튼 연방검찰의 검사는 루돌프 줄리아니(Rudolf Giuliani). 훗날 뉴욕시장을 역임하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던 인물이다.

줄리아니 검사의 종신형 구형 협박에도 버티던 밀켄은 동생까지 잡혀 들어오자 순순히 죄를 불었다. 밀켄은 검찰과 죄를 인정하는 대신 감형하는 협상(plea bargain)으로 1990년 벌금 6억 달러와 징역 10년, 증권업계 재취업 종신 금지령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1년10개월을 지낸 후 모범수 가석방으로 풀려나왔다. 정크 본드 투자 열기 속에 랭킹 5위의 투자은행으로까지 성장했던 드렉셀 증권사는 밀켄 수감 중에 벌금 6억5,000만달러를 낸 뒤 파산하고 말았다.

밀켄은 감옥에서 고생이 많았는지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로 감옥을 나왔다. 출감 직후엔 전립선 암 진단도 받았다. 암을 극복한 밀켄은 암 치료와 어린이 교육 등에 5억 달러 이상을 기부, 자선사업가로 거듭났다. 밀켄은 벌금과 자선기금에 출연하고도 자산 20억 달러(2010년 기준)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브스지 부자 랭킹에는 세계 488위에 올라 있다. 밀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월가 복귀를 바란다. 204개월을 투자해 단 4개월 만 손실을 입었을 뿐, 200개월 동안 수익을 올린 전설의 투자자가 돌아온다면 시장의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반면 반대론도 그 못지 않다. 레이건 시대 신자유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미꾸라지처럼 시장 질서를 뒤흔들어 오늘날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밀켄은 과연 한계기업과 중소기업의 구세주이며 천재 투자가였는지,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냉혈 기업 사냥꾼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단 하나, 확실한 점은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지 않고 제 손으로 번 돈을 남을 위해 쓰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 땅의 부자들이 좀처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졸부 근성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정말 정크 본드의 수익률이 더 높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크다. 밀켄을 부정적으로 보는 금융사가 에드워드 챈슬러는 역작 ‘금융투기의 역사’(강남규 옮김)에서 1980년대 정크 본드의 평균 수익률은 145%로 같은 기간 동안 투자적격등급 채권 수익률 202%는 물론, 주식 수익률 207%보다 한참 낮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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