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이 나라 경제의 핵심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마약사범과의 전쟁 과정에서 불거지는 인권침해를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에 외교적 막말 파문까지 잇따르면서 해외 투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필리핀 중앙은행 자료를 인용해 필리핀 주식과 채권에 대한 지난달 외국인 투자액이 전달보다 60%나 감소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 6월30일 이후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위축된 셈이다. 필리핀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달 들어서만도 31bp(1bp=0.01%포인트)나 올랐으며(가격 하락) 달러화 대비 필리핀 페소화 가치도 3.6%나 떨어졌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필리핀에서 등을 돌리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두테르테 리스크’를 꼽고 있다. 그의 과격한 행보에 낮은 부채규모, 중산층 증가, 연 7% 경제성장률 등 필리핀 경제의 매력마저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3개월간 정식 재판 없이 사살된 마약사범은 3,000명을 넘어섰다. 그는 특히 이달 초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마약사범과의 전쟁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개XX(푸탕이나)라고 욕할 것”이라고 말해 외교적 파문을 일으켰으며 이 여파로 미 백악관은 예정돼 있던 양국 간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여기에 두테르테 대통령은 다음달 열리는 미·필리핀 연례 합동 군사훈련이 “미국과의 마지막 훈련이 될 것”이라고 밝혀 양국 간 군사동맹까지 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 스탠더드라이프의 케런 커티스 개발도상국 투자 담당자는 “정치 변화가 (필리핀에 대한) 전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며 “필리핀의 법치주의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껴 투자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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