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웰스파고(Wells Fargo)은행은 많은 금융기관의 롤 모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형 은행들이 무너지는데도 꿋꿋이 성장세를 이어오는 등 위기를 기회로 삼아 큰 도약을 이뤘기 때문이다. 한때 자산 기준 미국 1위에 올랐고 지금도 미국 4대 은행이다. 2013년 하반기 이후 한동안 중국 공상은행, 미국 JP모건체이스 같은 공룡을 제치고 글로벌 은행 중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웰스파고의 진정한 경쟁력은 개인 고객 중심의 예금과 대출·신용카드 등 상업은행 업무에서 나온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다국적 금융기관과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로 웰스파고의 해외 영업 비중은 2% 남짓에 불과하다. 수익 중 98~99%를 미국 시장에서 올린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성장보다는 내적 역량 강화와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 구축으로 미국 내 기반을 확실하게 다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 소비자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역량 있는 은행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지금의 웰스파고를 있게 한 효자는 한 명의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는 교차판매였다. 웰스파고의 교차판매 실적은 6개로 미국 은행 평균의 약 2배다. 그만큼 고객 충성도가 높다는 얘기다. 금융위기나 저금리하에서 대다수의 은행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웰스파고가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욕심이 과한 탓일까. 웰스파고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교차판매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직원들이 판매목표를 채우려고 2011년부터 최대 240만개의 유령계좌를 개설해 수수료를 챙긴 것이 드러나 2,00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은 것이다. 은행 측이 고객 한 명당 8개의 상품을 팔도록 독려하자 실적 부진으로 해고당할 것을 두려워한 직원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번 스캔들로 직원 5,300여명이 해고되고 존 스텀프 최고경영자(CEO)는 스톡옵션 450억원을 몰수당할 처지다. 하원에서는 청문회까지 열린다는 외신 보도다. 웰스파고로서는 벌금·몰수보다 고객의 신뢰를 잃게 됐다는 것이 치명타이지 싶다. 우리 은행들은 유령계좌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웰스파고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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